# 2006년 4월, 용인에 있는 삼성전자 협력사 알에프텍의 공장 앞에 버스 두 대가 멈춰섰다. 버스에는 구미에서 올라온 삼성전자 생산직 직원 70여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생산라인으로 이동, 휴대폰 안테나 양산에 나섰다. 생산직 직원뿐 아니라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직원 6명도 함께 투입됐다. 이들은 2006 독일 월드컵 특수를 앞두고 유럽 지역에 수출할 TV폰(SGH-P910)에 탑재될 안테나 생산을 위해 협력사의 공장을 직접 찾은 것이다. 알에프텍의 직원들과 함께 이들이 생산한 안테나는 50만여대로 전량 이탈리아에 수출됐다. 삼성전자는 독일 월드컵이 열린 6월 한 달간 이 안테나가 탑재된 제품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매출을 올렸다. 또 알에프텍은 휴대폰 충전기에 이어 품목 다양화를 이루는 계기가 됐다. 상생(相生)이 현장에서 실천되는 순간이었다.
알에프텍(대표 차정운 www.rftech.co.kr)은 이전까지만 해도 휴대폰 충전기를 주로 생산하던 삼성전자의 협력사였다. 하지만 유럽형 이동방송인 DVB-H용 안테나를 생산하면서 품목 다양화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자사의 기술력은 물론이고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및 생산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알에프텍은 삼성전자의 지상파DMB 휴대폰용 안테나를 개발하며 안테나 제조의 강자로 떠올랐다. 또 국내 최초로 지상파DMB 인테나 모듈 개발 및 상용화, 유럽 모바일방송 규격인 DVB-H에 적용되는 초소형 복합모듈 수신 인테나도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제품은 노이즈에 강하고, 수신감도가 뛰어날 뿐 아니라 당시 기존 안테나보다 40%나 저렴해 삼성전자 휴대폰의 수출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차정운 사장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휴대폰 충전기를 생산하면서 갖춘 기술력과 삼성전자와의 꾸준한 연구개발 협력으로 고품질 안테나 양산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알에프텍의 기술력과 삼성전자의 지원이 적절하게 조화돼 이룬 성과”라고 말했다.
알에프텍은 휴대폰 충전기에서 출발해 이동방송용 안테나와 터치스크린용 스타일러스 펜도 잇따라 개발, 삼성전자 휴대폰의 글로벌 원가 경쟁력 향상에 기여를 했다. 특히 1999년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GSM 휴대폰용 충전기를 처음으로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GSM 휴대폰용 충전기는 CDMA 방식과 달리 어댑터 기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원 관리 기술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2년에는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로부터 표준형 휴대폰 충전기 국내 최초 1호 인증을 받기도 했다. 알에프텍은 또 본사 및 4개의 해외 공장을 통해 월 500만대의 충전기를 양산, 누적 생산대수 1억대를 돌파했다.
이 과정에서 확보한 자체 기술력이 삼성전자의 기술 지원과 상승 작용을 일으켜 모회사와 협력회사가 ‘윈윈’하는 관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환경 보호 및 에너지 절감의 흐름에 발맞춰, 대기전력 0.03W·에너지 효율 75%의 초저전력 충전기도 개발했다. 작년에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휴대폰 충전기로는 두 번째로 등록, 기술 선도 및 녹색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또 휴대폰은 물론이고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등 배터리를 사용하는 각종 전자기기를 패드에 얹어만 놓으면 충전이 가능한 무선 충전패드도 개발했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알에프텍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성공적인 상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2년에는 중소기업 IT화 지원사업과 관련 ERP 최우수 구축기업으로 대상(산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또 작년 11월에는 구매원가 구조 개선, 공정 자동화 등의 혁신활동으로 연간 125억의 원가절감 목표를 달성, 삼성전자의 ‘상생협력 제조부문 우수 혁신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인터뷰/차정운 알에프텍 사장>
“상생의 기본 틀은 모회사와 협력회사의 경쟁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의 경쟁력이 뒤처지면 진정한 상생은 불가능합니다.”
차정운 사장은 진정한 상생문화 확산을 위해 협력사들의 기술력 향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제조와 연구개발은 물론이고 경영 방식까지 토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 사장은 “대기업은 협력사의 경쟁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장점을 꽃피울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며 “일방적인 자금 지원만을 원하는 이전의 상생문화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협력사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정한 상생도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 같은 상생을 위해서는 모회사와 협력회사의 정보 공유도 중요하다”며 “전사자원관리(ERP) 등 단순한 전산화에서 더 나아가 글로벌 공급망관리(SCM) 체계까지 협력회사를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통해 알에프텍은 휴대폰 충전기 및 안테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게 됐다. 또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회사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시장. 특히 휴대폰 충전기를 개발하며 쌓은 전원관리 기술과 설계 기술이 밑바탕이 됐다. 특히 칩 생산과 패키징은 물론 조명 기구에 이르기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차 사장은 “대기업의 자금 지원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라며 “협력회사의 체질과 기술 경쟁력을 혁신할 수 있는 진정한 협력관계 구축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차정운 사장은 올해 ERP를 비롯해 균형성과관리(BSC), 전사원가혁신(GVE), 6시그마 등 선진 경영기법을 해외 현지법인까지 완벽하게 구축, 효율적인 기업 경영과 경쟁력 극대화에 나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상생>
삼성전자의 상생협력 체계는 협력사와의 동반 성장을 위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경쟁력 확보에 집중돼 있다.
지난 2004년부터 5년간 협력사에 설비 투자 및 ERP 구축에 2400억원을 비롯해 기술 국산화 및 신기술 도입 등에 1800억원을 투입했다. 또 취약 기술 및 애로 기술 해결에 1300억원, 현장 컨설팅 및 전문 직무교육 등에 700억원을 지원했다. 이 기간동안 총 6400억원을 지원한 셈이다.
특히 작년 5월 ‘상생협력실’을 신설한 이후에는 협력사의 애로사항을 체계적으로 수렴하기 위한 기반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협력사를 전담하는 전문인력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것 외에도 콜센터와 e메일 접수시스템을 구축해 상시적으로 협력사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협력사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교육, 기술, 자금 지원 외에도 사내외 전문가로 구성한 전문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 같은 노력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지난주 발족한 ‘협력사 경영컨설팅단’이다. 삼성전자는 연구개발 및 기술 지원에 머물던 협력회사와의 상생관계를 경영 노하우 전수까지 이어지는 체계로 업그레이드했다.
삼성전자는 인사·재무·개발·제조·혁신 등의 분야에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 임원 출신 10명으로 컨설팅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경영관리 △경영혁신 △제조 생산성 △기술·시스템의 4개 분야에서 협력사의 제반 문제뿐 아니라 경영관리 전반에 걸쳐 현장 중심의 맞춤형 컨설팅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삼성전자 측은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협력사의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다”며 “기존 제조 중심에서 종합 경영능력 향상을 위한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협력사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동안 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 지원에 초점을 맞추던 협력사와의 상생 관계를 고도화하고 글로벌 경제 위기를 함께 타개하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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