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기업 성장의 돌파구 ‘서비스화 혁신’에서 찾자
-주현택 삼성SDS TLC(Thought Leadership Center) 책임컨설턴트
최근 언론매체의 뉴스기사나 각종 기관의 발표자료를 살펴보면 ‘어렵다, 어렵다’ 하는 소리가 날로 쏟아져 나오곤 한다. 수출감소, 내수침체로 작년 4분기에 이미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3.4%로 지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올해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특히 수출의존도가 심하고, 후발 외국 기업과 기술격차가 더욱 좁혀지고 있는 국내 제조기업들에 더욱 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우리 제조기업의 돌파구는 전혀 없는 것일까. 한때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었던 제조기업이 이른바 ‘서비스화 혁신(product servitization)’으로 성장의 전환점을 마련한 바 있다. 여기서 우리 기업들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제조와 서비스를 연결하는 노력 전개=과거에나 지금이나 물건(제품)을 만드는 제조기업은 소비자에게 한 걸음 먼저 다가서고, 남보다 앞선 품질로서 고객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특히, 국경 없는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선후발 기업 간의 기술격차는 점점 더 좁혀지고 있어 선두 기업이라 하더라도 언제 추격당할지 모르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GE, IBM 등과 같은 선진 제조기업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제조 중심의 사업에서 수익창출능력이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함으로써 서비스 사업영역을 개발하고 기존 제조영역과 서비스를 연결하기 위한 혁신노력을 활발히 전개했다.
130년 넘은 역사를 가진 기업 GE는 기술 중심의 역량에 기반한 성장이 한계에 직면할 것을 생각하고 사업조직의 개편을 추진했으며, 지속적으로 서비스사업의 비중을 강화했다. 6대 CEO였던 보치(Fredeick Borch, 1963∼1972)는 최고 인재들로 성장위원회(growth council)를 구성해 경제성장률보다 성장률이 높은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찾게 했다. 성장위원회가 제안한 9개 사업 분야(제품 사업은 원자력 에너지·컴퓨터·상업용 제트엔진·고분자화학, 서비스 사업은 엔터테인먼트·지역사회 개발과 주택공급·개인서비스 및 금융서비스·의약품· 교육) 중에서 항공기엔진, 플라스틱 제품, 금융서비스, 의료시스템 등의 사업영역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나머지 분야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제품 영역이 제품에 결합된 부가서비스나 금융서비스와 결합해 더욱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항공기 엔진을 공급하는 GE 항공사업부는 엔진과 부속시스템 등의 제품 판매와 더불어 엔진 도입에 따른 리스 등 금융서비스, 엔진의 원격진단과 점검, 사용자 교육, 유지보수 서비스, 자산관리 서비스 등을 서비스 사업으로 강화함으로써 ‘항공기엔진’이라는 하나의 제품에 대해 제품생명주기 상의 서비스 니즈를 사업화하고 높은 수익성을 창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2008년도 GE의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납품한 엔진에 대해 90억달러(약 135조원) 규모의 장기 서비스계약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또 2007년 항공부문의 금융서비스 연계 매출은 46억500만달러 규모로서 사업부 매출 168억1900만달러와 비교해 보면 금융사업의 시너지를 통해 27% 정도의 추가적인 성과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GE의 혁신과정을 통해 우리는 기존의 제조기업에서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장발굴의 노력이 충성고객을 확보해 사업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이자 기업 고유의 사업영역을 재편하는 어려운 과정이라는 점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로 명성을 날린 IBM이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HP 등에 의해 메인프레임 시장을 잠식당하게 되고 PC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약화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당시 사업영역을 네트워크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기업 대상의 아웃소싱, 컨설팅, 소프트웨어 및 솔루션 서비스 등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것도 ‘서비스화 혁신’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품과 서비스 결합의 촉매제 ‘IT’=오늘날의 시대를 이른바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라 일컫고 있다. 이 말의 중심에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과 서비스의 결합이 핵심 원리로 자리 잡고 있다. 앞서 GE나 IBM 같이 거대 기업이 서비스화 혁신을 통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좁은 영역에서 제품시장의 경쟁이 서비스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2000년 HP의 메디컬 부문을 인수한 필립스는 2001년 의료측정 데이터 전송 및 환자 모니터링 솔루션 회사인 SHL텔레미데슨을 인수했으며, 의료장비의 판매에서부터 금융서비스, 장비의 유지보수, 업그레이드, 환자의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 전개했다. 필립스의 라이프라인 서비스는 북미의 3000여개 의료기관을 통해 가정의 환자에게 제공되고 있는 서비스다. 환자는 주기적인 상담전화와 자신에게 부착된 소형 단말기를 통해 응급출동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차별화된 IT 기반의 서비스 확장은 사업전반의 동반성장을 촉진해 매출 성장을 유발했다.
대부분의 독자가 알고 있듯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이 앱스토어를 통해 사용자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층을 확산하는 것이나 구글이 구글폰을 출시하고 안드로이드마켓을 통해 다양한 응용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도 ‘서비스화 혁신’의 일부다. 이들 기업은 적극적으로 IT를 활용해 고객에 대한 서비스 범위를 확장하고 상업적인 서비스와 연결, 기존 제품의 충성도를 높여감으로써 경쟁 기업에 앞서 가려고 하는 것이다.
GM 자동차의 온스타(On-Star) 서비스, 삼성SDS의 기업 대상의 프린팅 관리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 전반에서 이러한 변화는 현실화되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 도전할 시기=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나라는 닌텐도 같은 것을 만들 수 없나”라는 말을 해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적이 있다. 반감을 가진 여러 네티즌의 의견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닌텐도와 같은 고객 전략과 콘텐츠 제공 능력이 있다면 우리라도 못할 게 없다는 도전적인 생각을 해봄 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정보기술 인프라와 뛰어난 인재를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글로벌 넘버원의 ‘서비스 혁신’ 기업을 만들어내고 글로벌 시장을 석권할 수 있지 않을까.
자동차, 선박, 정보기기, 의료, 교육, 교통, 유통, 물류 등 산업 전반에서 선진 기업을 앞서는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GE와 같이 ‘서비스화 혁신’은 나름대로 어려운 경쟁과 자기파괴의 시험을 거쳐야 하는 노정이며 시도한 모든 기업이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참고할 몇 가지 사항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경쟁력 있는 중점 제품을 중심으로 서비스 기회를 확장해야 한다. 기존 제품에 대해 무차별적인 서비스화 추진은 많은 비용을 수반할 뿐 아니라 집중력이 분산돼 성공경험을 얻는 데 실패하게 될 수 있다.
둘째, 넓은 시각에서 기회를 찾는다.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스타벅스를 찾는 고객은 자존감과 분위기에 만족해 방문한다는 말이 있다. 애플이 스타벅스와 제휴해 음원 다운로드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양자 모두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모델이 된다.
셋째,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치사슬을 주도하라. 어떠한 산업이든 선두기업의 빠른 움직임은 곧바로 경쟁으로 이어진다.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서비스화의 기회’를 찾았다 하더라도 고객의 손끝까지 연결되는 가치사슬에서 주도적인 입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서비스화 혁신이란?
서비스화 혁신은 기존의 제조기업이 수익성 악화라는 환경적 제약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서비스 영역을 결합한 사업변화를 추진하는 혁신을 뜻한다. GE, IBM 등 다수의 선진 기업 등은 이러한 사업혁신의 노력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기회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