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 기업들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불황의 파고를 넘기 위해 적지 않은 기관과 기업이 신규 투자를 크게 축소하고 있다. 비즈니스 환경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IT 투자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IT 예산을 축소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부응하기 위해 현업 부서의 IT 부문 요구사항이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래를 대비하는 정보화 전략도 새로 마련해야 한다. 최악의 경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요 기관 및 기업들의 IT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정보책임자(CIO)들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CIO들은 올해 IT 투자 계획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을까. 또 IT 예산 절감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IT는 무엇일까.
전자신문 CIO BIZ?는 공공·금융·통신·제조·물류·유통·의료 등 국내 주요 80개 기업(기관 포함)의 CIO와 전산 담당 부서장을 대상으로 올해 IT 투자 계획, 신IT 도입전략, IT 전략 수립 시 고려사항, IT 예산 절감 방안, CIO의 위상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3개면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 올해 IT 투자 규모를 전년보다 축소한 기업은 당초 예상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공기관과 증권업계, 일부 그룹사의 경우 조사대상 업체의 반수 이상이 올해 IT 예산을 전년보다 오히려 늘리거나, 최소한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전체 IT 예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올해 IT 예산을 전년 대비 20% 이상 축소하겠다고 응답한 기업이 많아 전체 IT 예산은 전년보다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IT 시장 규모가 전년보다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IT 예산 줄인 기업, 예상보다 적어= 올해 IT 투자 예산이 감소됐다고 응답한 CIO는 38.8%인 31명으로 조사됐다. IT 예산이 전년보다 늘었거나 동일한 수준이라고 응답한 CIO가 49명인 것과 비교해 볼 때 훨씬 적은 수치다. 49명의 CIO 가운데 예산이 증가했다고 답한 CIO도 22명(27.5%)이나 됐다. 전년 수준과 동일하다고 응답한 CIO는 27명(33.7%)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경기침체로 대부분 기업이 IT 예산을 축소했을 것이라는 기존의 예측을 뒤집는 것이어서 매우 흥미롭다.
올해 IT예산이 전년보다 줄었다고 응답한 CIO가 3분의 1 수준에 그친 이유는 경기 불황 속에서도 기본적인 IT 투자를 외면할 수 없는데다 산업환경이 급변하면서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 구축이 한층 더 요구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금융권은 자본시장통합법 등의 시행으로 사업융합 및 신규사업 진출이 많아지고 대부분의 CIO들이 이를 지원하기 위한 IT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현업의 IT 지원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다 상당수 은행이 이미 지난해부터 차세대시스템 등 대규모 전산시스템을 개발 중이거나 연내 착수할 예정이어서 올해도 차세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IT 투자가 활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올해 IT 투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산업별로는 공공기관의 IT 예산이 가장 적게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14명의 공공기관 CIO 가운데 올해 IT 예산이 전년보다 줄었다고 응답한 CIO는 2명에 불과했다. 증가했다고 응답한 CIO와 전년 수준이라고 응답한 CIO가 각각 6명이었다(이번 설문조사에서 공금융기관 CIO는 공공기관이 아닌 금융기관 CIO로 분류했다).
정부 부처는 업무 개편에 따른 신규 개발 사업 증가와 시스템 업그레이드 작업의 필요성 때문에 IT 예산이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통합데이터센터 및 IT집적시설 구축 등 요인으로 IT 예산이 증가했다. 반면에 IT 예산이 감소한 기관들은 사업 축소, 추진시기 변경, 세입 감소에 따른 재정 악화 등 이유를 제시했다.
증권업계도 다른 업종에 비해 IT 투자를 크게 줄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업계 10명의 CIO 가운데 IT 예산이 전년보다 줄었다고 답한 CIO는 4명이었으며, 증가했거나 전년 수준이라고 답한 CIO가 각각 4명과 2명씩이다. 증권업계의 IT 예산이 종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으로 차세대시스템 등 대형 신시스템 구축이 활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회계기준(IFRS), 자금세탁방지(AML) 등 규제(컴플라이언스) 관련 IT 투자도 IT 예산을 크게 줄이지 못하는 이유로 분석된다.
통신업계도 IT 예산을 축소했다는 답변이 총조사대상 6명의 CIO 가운데 절반인 3명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3명의 CIO는 IT예산이 증가했거나(2명), 전년 수준(1명)이라고 답했다. 일부 그룹사와 의료·제약 업체 CIO도 올해 IT 예산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가장 민감한 은행권도 전체적으로 IT 예산을 축소하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총 12개 조사대상 은행 CIO 중 5명이 IT 예산이 전년보다 줄었다고 응답했으며, 나머지 2명이 증가, 5명은 전년 수준과 동일하다고 답했다.
IT 예산이 감소한 은행은 경기침체에 따른 비상경영 체제 돌입을 예산 축소의 가장 큰 배경으로 꼽았다. 이들 은행은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보다는 내부 프로세스를 효율화하는 데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T 예산이 증가했다고 답한 은행은 IFRS 등 규제 이슈에 대응하고 산업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 체계 마련을 위해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IT 예산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보험·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과 제조업계는 IT 예산이 감소했다고 답한 CIO가 각각 66.6%(6개)와 46.6%(7개)로 높은 수준이었다.
◇ IT 투자 ‘부익부 빈익빈’ 현상 두드러져=올해 IT 투자는 전체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올해 IT 예산을 전년보다 축소했다고 응답한 31명의 CIO 중 64.5%인 20명이 10% 이상 IT 예산을 줄였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10명은 20% 이상 줄였다고 응답했다. 반면에 IT 예산이 증가했다고 답한 22명의 CIO 중 72.7%(16명)가 10% 이상의 IT 예산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5명은 IT 예산이 20% 이상 증가했다고 답했다.
IT 예산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이유는 지난해 대규모 전산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완료한 기업들이 최악의 경기 상황을 맞아 신규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한 데 비해 아직 대규모 전산시스템 구축을 진행하지 않은 기업은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전산시스템 구축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IT 예산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특히 증권업계에서 두드러진다. 올해 IT 예산이 줄었다고 답한 4명의 CIO 모두 10% 이상 축소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20% 이상 축소됐다고 답한 CIO가 3명이나 된다. 반면에 IT 예산이 증가했다고 밝힌 4명의 CIO도 모두 10% 이상 증가했다. 이 가운데 3개 증권사 CIO가 20% 이상 증가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것은 차세대시스템을 구축 완료한 증권사와 현재 진행 중인 증권사가 확연히 나뉘기 때문이다.
제조업계도 IT 예산이 감소했다고 답한 7명 모두 10% 이상 감소했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4명의 CIO가 20% 이상 IT 예산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증가했다고 답한 4명의 CIO도 모두 10% 이상이라고 답했다. 공공기관도 IT 예산의 증가와 감소의 폭이 큰 편이다. IT 예산이 감소했다고 밝힌 2명의 공공기관 CIO 모두 10% 이상 IT 예산이 줄었다고 답한 반면에 증가했다고 답한 6명의 CIO 중 4명의 CIO가 10% 이상 증가했다고 답했다.
한 은행권 CIO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효율적인 IT 예산 수립의 계기가 됐다”며 “비즈니스 지원을 최우선 윈칙으로 삼아 IT 예산을 투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