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시네마 읽기]쇼퍼홀릭

[한정훈의 시네마 읽기]쇼퍼홀릭

 ‘홀릭’은 사전적으로 말하면 특정 분야에 몰입해 사리 분간이 안 되는 사람을 일컫는다. 알콜홀릭·러브홀릭·워크홀릭 등도 같은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제목만 들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영화 ‘쇼퍼홀릭(P J 호건, 이스라 피셔 주연, 조앤 쿠삭, 존 굿맨)’의 주인공 레베카 블룸우드는 쾌활한 직장 여성. 쇼핑을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점 외엔 별로 흠잡을 데가 없는 아가씨다. 그녀의 꿈은 자신이 좋아하는 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는 것. 그러나 전혀 기회를 잡지 못한다. 그러던 중,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온다. 이 잡지사와 같은 계열사인 재테크 잡지사에 취직을 하게 된 것.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된 그녀는 과소비로 얼룩졌던 자신의 과거를 훌훌 털어 버리고, 일과 사랑 모두를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된다.

 이 영화의 뒤엔 화려한 원작소설이 버티고 있다. 영화는 ‘쌈마이’ 같지만 원작의 인기는 상당하다. 소피 킨셀라의 ‘CONFESSIONS OF A SHOPAHOLIC’과 네 권의 속편 시리즈(‘SHOPAHOLIC TAKES MANHATTAN’ ‘SHOPAHOLIC TIES THE KNOT’ ‘SHOPAHOLIC AND SISTER’ ‘SHOPAHOLIC AND BABY’)는 미국과 영국에서 수많은 열혈 독자를 만들어내며 국제적인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한때는 시리즈 세 권이 워싱턴포스트의 톱10 리스트에 한꺼번에 오를 정도였다. 킨셀라가 레베카 블룸우드란 캐릭터를 만든 건 8년 전. 그후 35개국에서 1500만명의 독자가 이 사랑스럽고 대책 없이 낙관적인, 못 말리는 쇼핑광에게 열광해왔다.

 영화화는 우연히 시작됐다. 소설 ‘쇼퍼홀릭’ 시리즈의 성공은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관심을 끌었고, 그는 영화화를 결심했다. “여주인공인 레베카 블룸우드가 최대한 원작 그대로의 모습으로 스크린에 형상화 되게끔 하기 위해 원작자는 영화 제작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 브룩하이머의 설명. 제리 브룩하이머가 영화 ‘쇼퍼홀릭’의 메가폰을 잡을 감독으로 선택한 사람은 호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P J 호건 감독이다. 브룩하이머는 “호건의 경쾌하고 재치 있는 연출 스타일이 이 작품과 딱 맞아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호건의 전작들인 ‘뮤리엘의 웨딩’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아주 재밌게 봤다고 한다.

 이렇게 영화화된 쇼퍼홀릭은 정말 ‘쇼핑’ 같다. 다소 정신없지만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체화되는 한국 여성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와 환경이 다른 탓이다. ‘신상녀’는 맞을 수도 있겠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원작과 영화는 배경이 다르다. 이는 영화를 왜 만들었고 영화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묘사하는 중요한 복선이다. 레베카의 국적과 극의 배경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원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난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레베카 블룸우드를 만났다. 중요한 건 스크린 속에서 그녀의 생각과 그녀의 단점, 그녀의 유머를 제대로 표현해내는 것이었다. 이 영화엔 쇼퍼홀릭 책 시리즈 두 권의 내용이 압축돼 있다. 그중 두 번째 책의 주요 무대가 뉴욕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들이 대부분 영화 속에 들어 있다. 레베카의 이야기는 현대의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소비를 줄이고 신용카드를 멀리하며 새 출발을 다짐하는 레베카의 모습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