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우리 회사를 사겠다구요?”
산업용 로봇업체 B사 대표는 지난주 안면이 있던 중국계 로봇업체 사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요즘 사업하기 어렵지 않느냐. 우리가 당신네 회사를 인수할 의사도 있는데 얼마를 원하냐?”는 것이다. 그동안 한 수 아래로 봤던 중국 로봇업체가 진지하게 인수의사를 밝히자 B사 대표는 다소 황당했다. 올들어 경기불황으로 회사 매출이 크게 줄고 있지만 그래도 중국기업의 쇼핑목록에 오르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B사 대표는 한마디로 거부했지만 경제위기 속에 급부상한 ‘차이나파워’를 실감하고 뒷맛이 씁쓸했다.
위안화 상승으로 구매력이 높아진 중국 로봇업체들이 불황에 허덕이는 한국과 일본 로봇업체를 상대로 큰 소리를 치고 있다. 과거에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내세워 기술이전을 요구하던 중국기업들이 요즘은 탐나는 기업 쇼핑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고가의 외산 로봇장비를 구매할 때면 완제품 수입이 아니라 중국 현지업체를 통해서 조립양산을 요구하고 대부분 관철시킨다.
강귀덕 로보스타 이사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기회로 중국기업들이 해외 첨단 로봇자동화기술을 확보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 로봇시장에서 차이나 파워가 부상하는데 비해 전통의 로봇왕국 일본의 체면은 구겨지고 있다. 국내 로봇업체도 경기불황에 따른 투자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이웃 일본에 비하면 상황이 양호한 편이다.
야스카와, 산쿄, 아이텍 등 일본의 산업용 로봇회사들은 수출비중이 80% 이상이다. 살인적 엔고에 경제한파까지 겹치면서 일제 로봇장비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위기상황에 몰리고 있다. 국내 산업용 로봇시장을 주물러온 야스카와는 본사 수주량이 지난 연말부터 평소 3분의 1로 감소해서 비상경영체제로 돌아섰다. 적잖은 일본 로봇기업들이 지난달부터 주 3∼4일 근무를 시작했고 일부는 기업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다.
GM대우와 쌍용차가 잇따라 시설투자를 중단하면서 국내에 들어왔던 일제 로봇장비 상당수가 재고로 남았다. 경영 위기에 몰리자 일본기업들은 그동안 아끼던 고급 로봇기술을 주면서 한국에서 마음대로 생산하라는 파격적인 제안도 하고 있다. 업계 주변에서는 경제위기로 한중일 로봇산업의 위상이 거꾸로 뒤집힌 것 같다는 평가마저 내리고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