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가 지난 38년간 시행해온 ‘전기·정보통신공사 분리발주제도’ 폐지를 재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전기·정보통신공사 업계는 분리발주제도 폐지가 전형적인 대기업 지향 정책으로 최근 경기악화로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을 존폐 위기 속으로 내몰 것이라며 반발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건설산업선진화계획(안)’의 하나로 전기·정보통신공사 분리발주제도 폐지를 추진하는 기본안을 마련하고 유관 부처를 상대로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지난 1월 29일 대통령 주재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유지’ 쪽으로 가닥이 잡힌 상태였다.
전기·통신공사 분리발주제도는 대·중소기업의 공정 경쟁 유도를 위해 지난 1971년부터 시행해 왔으며 중소기업이 하도급 구조에서 벗어나 대형 건설업체와 동등한 조건으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경쟁 시스템으로 정착됐다.
국토부는 건설경기 악화로 인해 건설업체의 경영난이 지속되자 건설업계의 규제완화 의견을 수렴, 최근 마련한 건설산업 선진화 계획의 일환으로 이 같은 방안을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 대기업은 분리발주제도가 발주기관의 발주방식 선택권을 저해할 뿐 아니라 건설사업비 증가 요인이 된다며 지속적으로 폐지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업계는 분리발주제도가 폐지되면 96%를 넘는 중소전문 업체(약 1만8000개)가 4%에 불과한 대형 건설사(700여개)의 하도급 업체로 전락, 건설업계에 만연한 하도급 비리 구조의 심화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96%에 이르는 중소전문업체로서는 통합발주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인 종합건설업 자격을 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용 절감도 결국 하도급 업체인 중소기업에 전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기통신공사 업계 한 관계자는 “분리발주제 폐지는 중소기업에 하도급 업체로 전락하든지, 종합건설업 면허를 새로 취득해 입찰에 참여하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무책임한 조치”라며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하며 산업 곳곳에서 강력히 추진하는 분리발주제도를 유독 건설분야에서만 폐지하려는 정부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정부는 출범 후 중소전문 업계의 10년 숙원이던 ‘소프트웨어 분리발주제도’를 새롭게 도입했고, 신·재생에너지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제적으로 ‘신·재생에너지산업 분리발주제도’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또 건설폐기물 처리용역은 분리발주가 정착돼 있고, 환경영향평가 대행은 계약 분리가 명문화돼 있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분리발주가 폐지되면 중소 전문기업은 존립기반이 붕괴돼, 기술개발은 뒷전이고 하도급 로비에만 치중하게 되면서 실업자 양산, 기술개발 동기 상실로 산업경쟁력 약화가 초래될 것”이라며 “이에 비해 대형 건설업계는 불로소득에 가까운 하도급 차액을 매년 4조∼5조원 챙기게 돼 경제 양극화는 한층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때 이른 폐지 시점도 논란거리다. 이 제도는 지난 1월 29일 대통령 주재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재검토형 일몰제’로 분류되며 향후 5년간 계속 시행하기로 결정된 상태다. 국토부의 폐지 추진이 최근 건설 규제완화 움직임에 편승한 무리한 조치라는 비판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전기·정보통신공사 업계는 또한 “산업기술의 전문화가 더욱 요구되는 시류에 역행해 전기·정보통신을 일반건설업의 범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통합발주를 할 것인지, 분리발주를 할 것인지의 문제는 전적으로 발주자 의지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건설산업선진화계획(안)의 취지”라며“폐지 여부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