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발 ‘반(反)코리아’ D램 연합군 결성이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 자국 반도체 회사들을 대통합하겠다던 대만 정부가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놓은 데 이어, 대만의 주요 D램 업체도 정부 구상과는 반대로 독자 생존 쪽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하나의 거대 통합기업을 출범하겠다는 대만 정부의 계획은 일단 무위로 끝나고 각 기업은 당분간 이해득실에 따라 크게 둘로 쪼개져 회생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독자회생’ 선언=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대만 최대 D램 업체인 파워칩세미컨덕터는 자회사인 렉스칩일렉트로닉스, 그리고 일본 엘피다메모리와 합병 논의를 재개하겠다고 12일 밝혔다. 또 대만 2위 업체인 난야테크놀로지도 이노테라메모리, 그리고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제휴를 공고히 하겠다며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는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만 정부는 당초 파워칩·렉스칩·프로모스·난야·이노테라·윈본드 6개사를 한데 묶으려 했다. 위기를 맞고 있는 자국 D램 산업의 경쟁력을 재고하는 ‘대전환’의 기회로 삼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을 밝힌 지 불과 며칠 뒤 “완전한 통합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며 “설립 예정인 통합 회사 타이완메모리는 기술 습득에 주력한 뒤 제조수요에 맞춰 대만 내 현존하는 회사의 인수를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 대만정부의 계획 변경은 각기 다른 회사들을 합치겠다는 구상을 현실화하는 데 상당한 난관이 있어서인 것으로 추측된다.
파워칩과 난야의 이번 독자선언은 정부의 방침 선회에 따른 선택으로 풀이된다. 페이 린 파이 난야 부사장은 “최근 (6개사의 통합이 어렵다고 한) 정부 발표는 그동안 우리에게 해왔던 얘기와 많이 다른 얘기”라고 전했다.
◇파산 가능성 한층 높아져=해외 D램 업체들과 합병 등을 통해 독자생존하겠다는 대만 D램업계의 이번 선언은 해당 기업들이 작년 말부터 구상했던 복안 그대로다. 파워칩은 반도체 경기 불황에 따른 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 엘피다와 합병을 결의했다. 또 난야도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끌어들여 대만 정부에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만정부는 자국업체 통합을 우선시해 이를 모두 반려했다.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각 ‘연합군’에서 구성원 몇몇이 빠졌다는 점. 엘피다 진영은 ‘엘피다-파워칩-프로모스-렉스칩’ 4개사가 뭉칠 예정이었지만 이번에 프로모스가 제외됐다. 또 난야·이노테라 등이 뭉치는 마이크론 진영에선 윈본드가 빠졌다. 프로모스와 윈본드는 정부 측에 동참할 계획이다. 윌슨 웬 윈본드 부사장은 “타이완메모리와 협력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우리 공장을 임대하거나 매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제시 펭 프로모스 최고재무책임자(CFO)도 “타이완메모리와 협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로모스와 윈본드는 위기에 빠진 대만 D램 업체들 중에서도 가장 수익이 나쁜 기업들이다. 두 기업이 정부 측 동참을 공개한 건 그만큼 정부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생존게임에서 가장 먼저 낙오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세계 D램 산업계의 구조조정이 이뤄져 향후 D램 시장에는 더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번 예 푸르덴셜 파이낸셜 증권 투자신탁의 선임 펀드매니저는 “대만 반도체 통합 무산은 업체 파산 가능성을 열어 놔 장기적으로 D램 업황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