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크리`시대, 산업지형이 바뀐다](5·끝) ’발등의 불’ 포스트 고환율 시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손에 하나 들고 있는 기분이다.” 지난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수출 수혜주’로 LG전자를 꼽을 때 남용 LG전자 부회장의 표정은 오히려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아가 남 부회장은 “환율은 우리에게 독약으로 돌아 올 수 있다”며 따끔하게 경고했다. 한 마디로 고환율에 따른 수출 호조는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지난 13일 열린 주주총회에서도 남용 부회장은 다시 한 번 “올해 말 환율 효과가 사라질 것”이라고 재차 우려감을 나타냈다.

 고환율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율은 사실 경영의 외부 요인이다. 환율에 따라 기업은 일희일비하지만 기업의 진짜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는 아니다. 환율 효과의 본질은 가격이다. 경쟁업체보다 시장에서 저렴하게 팔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원화 가치 하락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이다.

 싼 가격은 분명히 시장에서 좋은 호재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품질·서비스 등이 제대로 어우러져야 진짜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환율이 일시적인 착시현상이라는 지적은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사실 우리는 ‘널뛰는 환율’을 우려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이를 즐겨왔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하면서 전체 매출이 줄기는 했지만 수출이 강한 우리 전자기업은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만큼 경쟁 기업에 비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오히려 환율이라는 외부 변수보다는 시장·기술과 같은 본질 변수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을 보자.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꽁꽁 얼어 붙었다.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 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이후 더 한겨울로 치닫고 있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기업이 긴축경영을 선언한 상태다. 경영 모드를 아예 ‘생존(Survive)’으로 잡았다. 당장 우리와 시장에서 맞부딪치는 글로벌 경쟁 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엔화와 달러화 가치가 사상 최대로 폭등한 일본과 미국 전자업체는 시장이 줄고 판매가 30∼40%까지 급감하면서 원가를 절감하고 사업구조를 바꾸고 있다. 생산 비용을 단 몇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원가구조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엄살’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들은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에 착실하게 대응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미국 글로벌 전자업계가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지금의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넘긴다면 한층 강화된 경쟁력으로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 체질 개선을 통한 강한 체력으로 무장한 이들 기업은 ‘포스트 고환율’ 시대를 노리고 있다.

 거품은 언젠가 꺼지듯이 갈피를 못 잡는 환율도 시장 논리에 따라 제자리를 찾아 갈 수밖에 없다. 일시적인 고환율 시점을 ‘위기의 시작’으로 보는 분석도 이 때문이다.

 더욱 수출의 고삐를 죄지 않으면 언제 기회는 곧 위기로 바뀔지도 모른다. 더 과감하게 연구 개발과 인재에 투자하는 등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진짜 승부는 환율 효과가 사라진 이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