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설립돼 10여년간 평판 TV의 ‘프런트 케이스’와 ‘백커버’ ‘프레임베이스’ 등 패널과 PCB 등을 제외한 케이스류 부품 분야 ‘일가’를 이룬 화인알텍. LG전자가 유럽에서 판매하는 PDP·LCD TV에 들어가는 케이스류 부품들의 절반 이상을 이 회사가 만들었다. LG전자 브랜드의 TV지만 기본 골격은 화인알텍이 만든 셈이다. 화인알텍의 부품이 LG전자 TV를 구매한 유럽 가정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화인알텍이 이처럼 LG전자와 공고한 협력체계를 구축, LG TV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끌어올린 데는 미래를 내다본 두 회사의 과감한 투자와 LG전자의 요구를 100% 이상 만족시키기 위한 화인알텍의 선제적 R&D가 있었다.
화인알텍은 모기업 합동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알루미늄 관련 피막 처리 기술인 아노다이징 전문업체로 출발했다. LG전자는 합동전자의 알루미늄 피막 처리 기술을 믿고 PDP TV 시장이 갓 생기기 시작한 2000년에 케이스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화인알텍에 했다. 당시 PDP 시장은 초기였기 때문에 그때의 시장 상황만 보고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 수는 없었지만 화인알텍은 과감히 LG전자의 전략을 믿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히려 LG전자가 처음 요구한 프런트 케이스 외에도 PDP 모듈의 뼈대 역할을 프레임베이스와 백커버를 적극적으로 만들면서 오히려 프레임베이스와 백커버가 현재 주력 품목이 돼버렸다.
권길순 화인알텍 전무는 “돈이 될지 안 될지 계산했다면 못했을 텐데 분명히 신규 시장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과 LG전자에 대한 상호 신뢰가 낳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화인알텍은 2002년 9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지만 LG전자와 협력관계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2003년부터 매출액은 매년 큰폭으로 성장했다. 2005년 710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2006년 1280억원, 2007년 1330억원 등 평판 TV 시장이 큰 폭으로 성장하면서 매출도 급증했다.
화인알텍의 이러한 경쟁력은 LG전자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R&D 조직에서 나왔다. LG전자는 화인알텍에 부품 생산을 맡기면서 끊임없이 R&D 인력을 화인알텍에 보내 제대로 물건을 만드는지 점검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화인알텍도 LG전자의 요구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2005년 R&D 조직을 별도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LG전자의 R&D 멤버들과 파트너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직접 연구소를 만든 권 전무는 이에 대해 “대기업 협력업체 역할을 하는 작은 조직에 R&D 조직이 왜 필요한지 되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기업의 요구를 뛰어넘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대기업도 외면할 것”이라며 “결국 중소기업도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생 협력을 위해서도, 자체 경쟁력을 위해서도 R&D 조직은 반드시 필요하며 지금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며 “LG전자 때문에 지금까지 성장해 왔지만 LG전자와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상생은 지속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화인알텍은 현재 폴란드와 멕시코, 중국에 해외 생산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LG전자의 해외 현지 TV 생산 공장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LG전자와 함께 해외로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화인알텍은 먼저 생산 법인을 구성한 LG전자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다. 언어나 문화, 제도적인 장벽 등 중소기업이 해외 진출 시 극복하기 어려운 점들을 LG전자의 노하우를 활용해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이다.
이를 통해 화인알텍의 현재 매출은 국내 매출과 해외 매출이 각각 절반을 차지한다. 그만큼 해외 시장에서의 매출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이 또한 제조업 기반의 대·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해 볼 수 있었던 사례다. 대기업은 현지의 미약한 산업 인프라로 인해 현지 부품업체를 활용하기 어려운 현실을 해결했고 중소 협력업체는 자사의 역량, 인재 부족, 투자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해외 현지법인을 직접 설립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없앨 수 잇었다.
화인알텍의 평판 TV 케이스 부품의 품질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는 두 회사의 인력 교류 프로그램도 한몫 했다. LG전자에서 퇴사한 직원의 2년간 연봉 60%를 LG측에서 지원, 화인알텍이 고용하는 형태의 교류 프로그램을 시행, 성과를 냈다. ISO 심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직원이 화인알텍에 3년간 근무하면서 품질 관리 등 대기업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전수했다.
화인알텍은 이제 LG전자와의 상생 협력 사업을 발판으로 사업 영역 확장에 적극 도전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자동차 1차 부품협력사와의 협력을 타전하고 특수 모니터 업체와의 협력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와의 협력 사례로 쌓은 역량으로 알루미늄 부품이 필요한 시장으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권길순 전무는 “LG전자와의 협력업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다른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최근 분위기는 LG전자도 독려까지는 아니지만 협력업체의 영역 확장 움직임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 “이 모든 것이 그동안 공고히 구축한 대·중소기업 간 신뢰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권길순 화인알텍 전무>
“중소 협력업체의 적극적인 의지가 상생 협력 성공을 좌지우지합니다. 그러나 중소 협력업체의 애로사항을 일괄적으로 개선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은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북 왜관 지방산업단지에 위치한 화인알텍에서 직접 만난 권길순 전무는 대기업과의 상생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한꺼번에 컨트롤할 수 있는 사령탑이 없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제기했다.
권 전무는 “상생은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중소 협력업체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양방향으로 오갈 때만 의미 있는 것”이라며 “특히 중소기업이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로 나서지 않는다면 협력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협력 업체 입장에서 어려운 점이 발생했을 때 해결하기 위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토로했다. 권 전무는 “전문성을 중심으로 부서가 쪼개져 있는 대기업의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의사 결정을 해줘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까지는 이런 역할을 하는 별도 조직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매년 해외 현지 생산법인이 12월에서 1월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LG전자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정작 어떤 모델에 집중할지 계획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때에 맞춰 사업 전략이 나오는 대로 금형 및 부품 생산 세팅을 맞출 수 있지만 해외 법인은 계획이 늦어지는만큼 세팅하는 데는 해운 일정 등을 감안하면 몇 배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해외 매출이 갑자기 줄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자금이 풍부하지 못한 중소 협력업체는 직원들의 급여를 주기가 빠듯해진다.
권 전무는 “지난해 실제로 이런 사례가 생겨 작년 상반기 매출이 목표 대비 30%밖에 달성하지 못해 힘든 시기를 넘겼다”며 “이런 어려움 때문에 불철주야 뛰어다녔지만 결국 속시원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또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로 해외 전략을 섣불리 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이해한다”면서도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별로 위기 상황에 대한 분석과 타개책을 모색하는 조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권 전무는 상생 협력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신뢰를 뽑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서로 간의 믿음이 없으면 상생은 무너지게 돼 있다”며 “대기업들이 자잘한 일에도 신경써주면 중소 협력 업체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지난해 5월 열린 제1회 글로벌서플라이어스데이 행사를 계기로 새로운 ‘글로벌 파트너십원칙’을 제정 발표했다. 이 원칙은 공정성, 협력관계 구축, 경쟁력 강화, 전략 공유 네 가지로 구성됐다. △경쟁력을 기준으로 한 구매 협력관계로 투명성을 확보하고 △협력업체들의 아이디어와 요청사항을 반영해 상호 이해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며 △생산성, 품질 등 경쟁력 향상을 위한 혁신활동에 공동노력을 기울이고 △신제품 개발 초기단계부터 전략 방향을 공유, 최고의 성과를 창출하자는 내용이다.
LG전자는 특히 협력회사의 경쟁력이 LG전자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협력회사가 근본적인 경쟁력을 강화해 자생력을 갖고 견실히 성장할 수 있도록 자금지원뿐만 아니라 교육·혁신활동 지원, 기술 지원, 중견인력 지원 등 경영인프라 구축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투명거래 관행을 확고하게 정착시킨다는 방침이다.
2007년에는 잠재업체와 신규업체 등록과정에 대한 프로세스를 100% 온라인화하고 모든 업체에 동등한 조건의 심사를 천명했다.
또 협력회사가 성장기반을 확대할 수 있도록 LG전자에서 필요한 기술 및 제품을 제안, 이를 개발하고자 하는 협력회사와 함께 협력 체제를 구축 운영할 계획이다. 이러한 R&D 개발활동을 통해 자사의 경쟁력 향상은 물론이고 참여하는 협력회사에 대한 기술, 인력, 경영컨설팅 등이 포괄적으로 지원될 예정이다.
LG전자는 또 투자자금 지원, 결제일 단축, 네트워크론 연계은행 확대 등을 통해 자금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2004년부터 협력회사의 생산성·품질 향상, 첨단기술 개발, 시설확장 등의 필요자금을 회사당 연리 4%대에 20억원 한도로 5년간 1000억원 규모로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종전 60일이던 결제기간을 30일로 단축한 데 이어 2005년 6월부터 국내 중소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현금결제를 전면 시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내의 전문가 40여명으로 구성된 컨설팅 전담조직은 꾸준히 협력업체에 파견해 6시그마, 경영합리화, 원가절감, 공정개선 활동 등을 직접 지원하고 있다.
LG전자는 특히 2005년부터 지속적으로 자사의 퇴직임직원을 대상으로 협력회사에 인력을 이동, 자연스럽게 경영노하우를 전수하는 ‘중견인력이동제’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까지 총 62명이 협력사로 이동을 완료했다. 이동한 임직원은 2년간 급여의 60%를 지원받고 있다.
한편 LG전자는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와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 공정거래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공정한 하도급거래를 위한 확고한 의지를 천명함과 동시에 공정위에서 요구하는 3대 가이드라인(공정위가 정한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바람직한 계약체결 가이드라인 도입 준수, 협력업체 선정/운용 가이드라인 도입, 하도급 거래 내부 심의위원회 설치 운용 가이드라인 도입 운용)을 모두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김민수기자 mim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