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UN) 기준 공공정보화 수준 세계 6위. 정보사회진흥원 발표 국가정보화 수준 3위. 대한민국의 공공정보화 현주소를 보여주는 순위다. 우리나라는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막대한 공공정보화 예산을 투입, 전 세계적으로 월등한 공공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했다. 인프라 측면에서만 본다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공공정보화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공공정보화를 ‘인프라’ 관점에서 바라봤다면, 앞으로는 ‘서비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 지난해부터 공공정보화 정책의 초점을 ‘서비스’에 맞춰 재정립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공공정보화는 정보격차 해소, 공공기관 업무 효율화, 대국민서비스 강화 등을 목표로 숨가쁘게 진행돼 왔다. 과거 참여 정부를 정점으로 공공정보화는 양적으로는 거의 모든 종류의 정보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아직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단절된 시스템 운용…유지보수 비용 40% 넘어
현재 구축된 공공정보화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산하 기관들까지도 모두가 개별적으로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시스템은 상호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함에도 대부분 단절돼 있다. 이는 과거 공공정보화를 추진하면서 인프라 구축에만 역점을 둬 공공기관들이 개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현재 40여개의 중앙행정기관에서 운용하고 있는 정보시스템만 1만1500여개에 달한다. 여기에다 300여개의 공공기관이 운용하는 정보시스템까지 포함하면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성과관리, 고객관리, 포털, 인사관리, 재무관리 등 정보시스템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유사성이 매우 높은 업무다. 따라서 이러한 업무에 사용되는 애플리케이션은 공통으로 개발해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이렇게 운용 해야만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공공기관별로 공통 업무 애플리케이션을 따로 운용하고 있어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들어가는 실정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공공기관의 유지보수 비용은 전체 IT 예산의 40%를 넘어서고 있다”며 “현재의 추세대로 정보시스템이 계속 확대된다면, 유지보수비용이 전체 IT 예산의 50%에 육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보시스템 구축으로 인한 비용절감보다는 유지보수 비용 예산이 더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공공기관 정보시스템에 대한 통합 및 연계 이슈가 제기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공기관 정보시스템 간 연계 부족도 ‘원스톱’ 대국민 서비스 제공에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일례로 중소기업 지원서비스 사례만 봐도 이 같은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중소기업청의 자금지원, 무역협회의 중소기업 수출절차 지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해외 바이어 찾기 및 시장 개척, 수출입은행의 수출대금 관련 지원 업무가 모두 동일한 중소기업 대상이지만, 개별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각 기관의 관련 업무시스템이 연동되지 못해 중소기업 회원정보 등이 공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정보시스템 구축 방향을 종전의 기관별 구축 방식에서 서비스별 구축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정보시스템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정보시스템으로 구축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유관 기관 간 협조체계를 마련, 정보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유지보수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비표준화로 부처 간 시스템 연동 어려워
비표준화로 인한 상호운용성 저하, 재사용불가, 중복투자 등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 역시 각 공공기관들이 전체적인 관점이 아니라 개별 기관의 관점에서 정보시스템을 따로 구축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다. 시스템 연계의 필요조건인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시스템 통합 및 연계를 추진하려 해도 쉽지 않다.
현재 정부는 국가 차원의 범정부 전사아키텍처(EA)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하지만 이를 수립한다고 해도 앞으로 진행되는 정보화 사업에 주로 적용되는 것이고, 현재 운용되고 있는 시스템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시스템 연계 표준을 새로 수립하면 모든 공공기관의 기술 표준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까지도 발생할 수 있어, 막대한 추가 투자 비용이 요구된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 EA 등을 통해 단순히 기술표준을 수립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구축된 시스템을 어떻게 연계해 활용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를 위해 각 기관과 의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 공공 전문 컨설턴트는 “기능이 동일한 시스템은 여러 기관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고, 정보시스템 표준을 마련, 여기에 맞게 정보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보시스템 리소스 센터를 구축해 공공기관들의 정보시스템 재사용 비율을 높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600여개 넘는 대국민포털…이용률 현저히 낮아
무분별하게 구축된 대국민 포털들도 문제다. 현재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포털은 1600여개에 달한다. 더욱이 이러한 포털들은 이용률이 매우 낮다. 대국민 포털들은 대부분 민간에서 운영되고 있는 포털에 비해 콘텐츠 및 서비스 측면에서 질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관리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생색 내기 성격이 강하다. 예산만 낭비한 꼴이다. 따라서 현재의 ‘1기관 1포털’이라는 개념을 지양하고 유사한 여러 기관이 공동으로 포털을 구축하거나 통합해 관리 역량을 집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고 있는 이유다. 일각에선 보다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민간 기업이 포털 운영에 참여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체계적인 정보화 투자 관리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 사업에 대한 타당성 평가기준도 명확하지 않아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 정보화 사업 성과관리 절차도 미흡해 예산투자가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각 부처들은 개별적으로 정보화 예산을 투입해 사업을 추진 중이다.
게다가 공공기관의 여러 사업에 포함돼 있는 IT예산은 파악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는 정보화 사업에 대한 중복 투자를 유발, 국민 세금을 낭비하게 된다. 체계적인 투자 검토를 위해 의사결정도구 및 지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선진 국가에서 수행 중인 포트폴리오 기반의 정보화 투자 관리체계 도입도 시급하다.
#정보보안, 제도적 방안 마련 부족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정보보안 사고도 문제다. 그동안 공공정보화는 공무원의 업무 효율성 향상과 대국민 서비스 만족도 향상을 위해 정보화가 진행돼 왔다. 자연스럽게 국민 개개인의 재산 및 건강 등과 관련된 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게 됐다. 그러나 정보시스템에 대한 관리 소홀로 인해, 또는 담당자의 실수 및 호기심으로 인해 국민 개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정보유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보보안시스템 구축도 중요하지만, 이에 걸맞은 제도적인 환경도 갖춰져야 한다. 즉, 정보보안을 위한 내부통제나 리스크관리 측면에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사업 추진과 대형 IT업체에 의존하는 프로젝트 추진도 개선해야 할 사항이다. 최저가 낙찰 시스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련 시장을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효율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공무원의 역량 향상 및 자문위원 활용 등이 적극 이뤄져야 한다.
신혜권기자 hk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