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주요도시에는 빈민촌 ‘파벨라’가 있다. 마약 밀매를 주업으로 하는 조직이 장악한 이곳에서 기자는 IT가 끊임없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확인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집들이 붙어 있는 주택가에서 현지인은 “얽히고설킨 전선줄을 보라”고 말했다. 기자는 수많은 검은색 선 가운데 푸른색 선 하나를 발견했다. 그 선을 쫓아가 보니 허브가 보였다. 인터넷망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넉넉하지 않지만 돈만 생기면 가전제품을 수시로 바꾼다고 한다. 집은 작지만 냉장고·TV·세탁기 등등 없는 것이 없다. 최근에는 ‘LCD TV’를 대거 들여놓고 있다고 전했다. ‘전기를 불법으로 연결해 쓰면서 TV는 LCD로 보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남미에서 10년간 활동한 모 대기업 관계자의 “위기일수록 하이엔드(고급)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시장 침체기에 소비자는 싼 제품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모든 업체는 저가 시장에서 승부를 걸고, 하나같이 가격 인하에 나선다. 결국, 레드오션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를 역발상해야 한다는 것. 고가 시장의 경우 침체기 전체에서 차지하는 시장규모는 줄지만 수익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어느 곳이나 틈새시장은 있다. 그 사실을 브라질 빈민가는 증명하고 있다. 현지 KOTRA 관계자는 한국 중소기업들이 이곳에서 저가 제품으로 승부를 하려다 실패하고 철수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가격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에서 해외 틈새시장을 뚫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국내에서 안 팔리는 제품을 적당히 포장해 해외에 저가로 내놓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고도의 기술과 좋은 서비스가 담긴 최고의 제품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파벨라에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