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타결시 ‘자동차·전자제품’ 최대 수혜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간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이 임박해지면서 관세 철폐 및 폐지 등에 따른 우리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4억9000만 소비자·소득 14조9000억달러·연간 수입 4조6000억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시장 진출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26일 KOTRA가 FTA 타결을 전제해 EU 20개국 주요 현지기업과 수입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FTA 체결 최대 수혜품목은 자동차, 섬유·의류, 전자제품으로 나타났으며, 자동차와 전기전자 부품은 유럽 대형기업의 아웃소싱 확대 전략과 맞물려 수출 확대 기회를 맞게 될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조사에서 수출 유망 분야 중 하나인 자동차는 브랜드·물류·AS 개선으로 가격 효과를 제대로 살려야 한다고 지적됐다. 유럽 현지 자동차 수입 딜러들은 한국차 수입관세(10%) 철폐가 대당 1000유로 이상의 가격인하 효과가 있는데다 수입관세 환급까지 인정될 경우 대당 300유로의 추가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네덜란드 그리니브의 수입담당 미카엘 블린판테씨는 “우수한 품질과 가격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다소 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브랜드 인지도와 디자인을 끌어올릴 경우 유럽시장에서 한국차가 거센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디지털 방송이 확산되는 유럽에서 빠른 성장을 보이는 위성방송수신기(셋톱박스)는 저가 중국산과 터키산에 밀려 고전했으나, 원화 약세와 관세 철폐로 가격경쟁력이 회복되어 수출 확대가 기대됐다. 독일 대형 IT제품 유통기업인 올디스 관계자는 “가격이 셋톱박스 구매에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지만 신속한 납품과 충실한 AS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가능하다면 유럽 현지에 상주 직원을 파견해 구매처와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U의 엄격한 근로자 보건 및 안전 기준을 준수하기 위한 중동부 유럽 신규 가입국의 산업용 장갑 수요가 늘면서, 시장이 연 9% 가깝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산은 특수 작업 용도의 고부가 제품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럽시장에서 평가받고 있다.

EU 대기업의 아웃소싱과 SOC 민자유치 등 사업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의 저가품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고 기업의 비용절감 노력이 강화되면서 유럽 아웃소싱 시장이 연간 10% 성장하고 있으며 특히, 자동차와 전자 산업은 한국산 부품경쟁력이 높아, 관세까지 철폐될 경우 커다란 기회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됐다.

유럽 주요 완성차 메이커들은 불황 극복을 위해 현재 60%에 달하는 부품의 외부조달 비율을 70%까지 높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르노의 오딜 데포르주 구매이사는 “한국산 부품 가격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고 “관세 철폐가 5∼10% 물류 비용을 상쇄하게 될 경우 더욱 매력적”이라고 예상했다. 구매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독일 다임러도 한국산 부품의 품질대비 가격경쟁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특히 전장 부품 구매에 관심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노키아·플렉트로닉스·지맨스 등 유럽 주요 전자제품 메이커들도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한국산 부품 아웃소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어권 최대통신사인 텔레포니카는 아웃소싱 대상지역을 기존 아르헨티나, 칠레 등 중남미 국가로부터 전 세계로 확대하는 ‘글로벌 얼라이언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을 우선 조달대상국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조달협정에 입·낙찰 실적 요건이 폐지되고 민자사업 개방이 명문화 될 것으로 예정됨에 따라 EU조달시장 접근성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헝가리의 대규모 화력발전소 건설과 루마니아의 고속도로건설 사업 등이 올해 중 민자사업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유럽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직수출 확대 등으로 경영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어, LCD TV 등의 품목은 높은 수입관세를 피해 유럽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으나, 관세 철폐 효과와 물류 비용을 분석해 한국으로부터 직수출이 검토되고 있다. 무관세인 디스플레이 패널을 수입해 폴란드에서 완제품 TV를 생산하고 있는 LG전자는 현지 생산비용과 직수출 비용을 비교해 비중을 조정할 방침이며, 헝가리에서 생산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타이어도 직수출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체코 생산법인은 현지동반 진출해 있는 국내 협력업체로부터 부품 납품단가가 하락해, 연간 약 6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체코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한화 L&C는 유럽 완성차 메이커 대상 OEM 납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프랑스 접경 벨기에 몽스에 위치한 두산인프라코어는 원산지기준 합의내용에 따라 현지 생산량을 조정하는 등 경영전략을 수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유럽 산업계는 FTA에 대해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관세 환급이나 원산지 기준 완화에는 불만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경제인연합회는 한국과의 FTA 체결을 환영하지만, 관세환급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 수출업체에 불공정한 비용 혜택을 주는 것이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유럽자동차업계는 수입관세 10% 철폐가 부담스러운데다가 원산지 기준을 현행 부가가치 60%보다 완화할 경우 중국 등 주변국으로부터 저렴하게 부품을 조달하는 한국 업계의 가격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유럽자동차협회(ACEA)는 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회원국 정부의 신속한 지원책을 촉구하면서, 친환경차 개발과 생산을 앞당기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기계, 의약, 패션 등 유럽산 경쟁력이 높은 분야는 한국시장 개방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유럽기계협회는 한국과의 FTA 타결이 역내 확산 조짐을 보이는 보호주의를 차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태리 섬유패션협회(SMI)는 보완적인 양국의 산업 구조상 교역 확대와 산업경쟁력강화가 기대된다는 입장이다.

KOTRA는 FTA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특혜관세를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납기 단축, 물류개선, 브랜드 홍보 등 현지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OTRA 관계자는 “EU는 역내 교역비중이 높고 회원국 간 산업 분업화와 수직계열화가 이루어진 시장이어서 저렴한 가격만으로 뚫고 들어가기가 용이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원산지 증명을 철저히 준비하고, 동종·유사 품목은 현지 물류망을 공동으로 운영하며,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브랜드 전략을 구사해 기회를 100%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