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6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는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들이 ‘공급망관리(SCM)’ 개념을 도입해 자재구매·생산·물류·판매·수요예측 등 정보를 동기화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비용을 절감하고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의도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최근 SCM 개념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세계의 많은 글로벌 기업이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 경영의 ‘핵심 패러다임’으로 SCM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SCM에 첨단 정보기술(IT)이 접목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이제 그 누구도 SCM(Supply Chain Management)을 문자 그대로 ‘공급망 관리’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첨단 IT에 기반을 둔 SCM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재화를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하며 시공을 초월한 의사결정과 적용을 가능케 한다. 지구 반대편 창고에 몇 개의 제품이 남아있는지 알 수 있고, 어디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최고 의사결정자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SCM의 도입 및 적용으로 곳곳에 산재해 있던 비효율은 자취를 감췄다. SCM은 실물의 흐름을 관리하던 개념에서 벗어나 이제는 미래에 적극 대처하기 위한 중요한 정보 전략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하지만 SCM의 도입 및 적용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따른다.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SCM을 구축하고 미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 많은 기업이 현재 이 문제로 고민 중이다.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고 국내 대표적인 제조업체들의 SCM 현황을 살펴본다.
◇전사적인 차원의 변화가 성공의 열쇠=SCM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선 경영진은 물론이고 전사적인 차원의 변화 의지가 중요하다. SCM을 비교적 일찍 도입했던 국내 제조기업들은 초창기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좋은 시스템’을 도입하면 곧 바로 ‘좋은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경영전반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오류를 수정하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 급기야 조직을 개편하고 특정 임원 밑에 SCM 핵심 군단을 꾸려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혁신했다. CEO부터 말단직원까지 변화했다. 이런 이유로 SCM은 ‘변화 관리’를 동반한다. 특히 CEO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의지는 SCM 전략의 성공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기업들의 SCM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조상욱 AT커니 부사장은 “전자, 반도체, 철강 등 한국의 글로벌 제조 기업들이 SCM 성과를 높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는데, 각각의 기업 환경에 최적화된 전략을 마련한 게 주효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기업이 보유한 핵심 경쟁력, 시장의 요구사항, 생산 측면의 제약요건 등 경영의 제반조건을 정확히 평가하고 로드맵을 세운 후 전사적 변화관리를 이끌어내야 SCM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시스템은 최적화의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업환경과 고객 특성에 맞춰 새롭게 정의된 SCM 전략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한 일본 전자업체 소니가 삼성전자의 SCM 솔루션 및 구축에 관여했던 인력까지 동원해 SCM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이 역시 시스템 모방에 그쳐서는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 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수요 예측의 정확도를 높여야=거대한 ‘공급망’을 관리하는 데 수요예측 능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요예측은 기업의 사활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생산성을 아무리 높여도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급변하는 판매 현장에서 시장을 읽는 정확도를 높여야 오차가 생기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SCM의 글로벌화 및 고도화를 통해 생산성 강화와 원가절감을 실현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차, 하이닉스반도체 등 기업은 수요예측의 정확도 향상 및 고객 대응력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모니터링 체계 강화 및 조기경보 체계 구축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미 구축된 글로벌 SCM망을 이용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해 미래를 경영하겠다는 전략이다. 수요를 예측하고 원가와 생산속도를 고려해 이를 제품 개발 계획에 반영하는 제품 연계 SCM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비해 도요타, 소니, 도시바 등 일본 기업은 수요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경영위기를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요타는 생산과 판매가 격리돼 있는 등 SCM이 취약해 경영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으며, 소니와 도시바도 최근에야 SCM의 문제점을 인식, 마스터 플랜을 새로 마련하고 구축에 나서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기술만 믿고 수요와 판매 간 연결고리의 중요성을 간과하다 시장의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제품의 우열을 가리기가 점차 힘들어진다. 대신에 시장의 논리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수요에 맞춰 대응하는 민첩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수요예측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가시성’을 높이고, 속도를 붙여라=SCM이 구축됐다면 최대한의 정보를 최소한의 시간 안에 한눈에 들어오도록 정보의 가시성(Visibility)을 높이고,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전 세계 모든 판매 및 생산, 공급정보를 추출해 한눈에 보여주는 시스템과 정보 입력프로세스, 그리고 지표의 정확성이 요구된다.
현재 글로벌 SCM 구축기업들은 전 세계 곳곳의 판매 직원이 입력하는 판매 정보와 공장별 생산량 및 자재 수급계획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시간 제조·출하 현황 파악을 위해 생산관리시스템(MES)과 연계하고 있으며, 외주 물량정보도 즉시 조회가 가능토록 하고 있다. 통합된 정보를 한눈에 보기 위해 SCM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기도 한다.
판매 및 생산 계획을 세우는 모임인 ‘S&OP(Service & Operation) 회의’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사업부별로 전 세계 제품생산 및 판매계획을 주 단위 S&OP 회의에서 마련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일 단위로 전환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실시간 정보를 보며, 24시간마다 생산·판매 계획을 갱신하겠다는 의지다.
주 단위 계획을 최대한 유지하되 공급·수요의 순수 변경분만 반영하는 NCP(Net Change Planning)의 도입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NCP는 특정 주기없이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만한 변경요인이 발생될 때 마다 계획을 조정하는 체계다.
윤형제 LG CNS 컨설팅 위원은 “계획주기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와 업무의 마감을 짧아진 주기에 맞춰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기간 시스템의 개선과 생산관리시스템·창고관리시스템·운송관리시스템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24시간 단위 프로세스 전략을 지휘하고, 통제할 전문 인력의 양성도 시급하다.
◇비용 절감 위한 고유 모델 창조하라=최근 삼성SDS의 조사에 따르면 311개 기업 중 25%(77개)가 SCM을 이미 도입했으며, 반도체와 전자 등 대기업의 도입 비율이 특히 높았다. 향후 중소기업과 서비스 유통기업들을 중심으로 SCM을 도입하려는 기업들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은 SCM을 통한 재고감소와 운영 비용절감 효과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남을 모방해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현재 자신의 기업이 가진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구체적인 비용 절감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처럼 비용절감이 화두가 되는 시기에는 재고감축, 리드타임 최소화, 생산성 강화 등 자원의 효율을 최대화 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이 가운데 자신의 기업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여기에 맞는 SCM 목표를 정해 비용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사안에 집중해야 한다.
△SCM(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망관리)이란?
기업 활동에서 자재구매, 생산, 물류, 판매, 수요예측 정보를 동기화시켜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효율을 추구하는 일련의 전략. SCM을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APS(Advanced Planning and Scheduling)가 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