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배아줄기세포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연방정부의 지원을 허용했다. 오바마가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전격 허용한 배경은 망가진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생명공학산업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다급함 때문으로 풀이된다. 도대체 배아줄기 세포란 무엇이며 주변국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한국도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서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우선 줄기세포(stem cell) 이해부터 해보자. 줄기세포는 우리 몸에서 손상된 조직과 세포들을 다시 재생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줄기세포를 치료제로 활용하면 그 강력한 재생능력으로 그동안 약물치료, 수술로 치유가 어려웠던 여러 난치병도 건강한 세포조직을 재생시켜 병마와 싸울 수 있다. 이것은 의료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단순히 신체의 회복력을 돕거나 손상된 조직을 잘라내는 단계를 넘어서 문제가 생긴 장기를 대체하거나 복원하는 등 질병의 근원을 제거하는 새로운 의료서비스가 등장한다. 고장난 자동차를 임시변통으로 땜질만 하는 대신 번쩍거리는 신형 부품으로 교체하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인간의 손상된 장기도 자동차 정비소에 새 부품으로 바꾸듯이 생명을 연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존 의료계의 판도를 뒤집는 거대한 시장수요가 열린다.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바라보는 대중의 가치관에도 큰 파장이 불가피하다. 이제 인간의 수명은 하늘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고 투자하기 나름이라는 사고방식이 퍼질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기는 사람도 있고 내심 못마땅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줄기세포 연구는 과학, 산업을 넘어선 뜨거운 사회적 논쟁거리다.

 관심이 집중되는 줄기세포는 크게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 두 가지로 구분된다. 성체와 배아,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

 ◇성체줄기세포=말 그대로 성인의 신체조직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다. 이미 특정 조직으로 성숙단계에 도달한 신경, 혈액, 제대혈, 지방, 피부 등에서 각각 줄기세포를 뽑아내기 때문에 부위별로 사용목적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화상환자에게 피부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를 뿌리면 새로운 피부조직이 쉽게 만들어진다. 골수가 필요하면 골수에서 성체줄기세포를 뽑아 배양한 다음 주입하면 된다. 지방층이 얇아져 주름진 얼굴에는 지방줄기세포를 주입하면 다시 탱탱한 피부로 돌아온다. 성체줄기세포는 피부, 지방과 같은 신체조직 일부를 의료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 논쟁에서 자유롭다.

 일찍부터 연구가 시작됐고 의료계에서 임상실험도 가장 활발하다. 단점은 성체줄기세포는 대부분 분화능력이 약해서 의료계에서 원하는 강력한 치유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린이보다 성인의 신체재생능력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또 성체줄기세포는 부위별로 분열이 이미 상당히 진행돼 있어 모든 신체부위에 적용할 수 없다. 피부줄기세포로 화상을 입은 피부조직을 치유한다고 해서 맹인의 시세포까지 되살리지는 못한다. 성체줄기세포는 다양한 임상실험을 거쳐서 일부 상용화 단계에 도달했다. 국내 증시에서 줄기세포 테마주로 불리는 기업 대부분은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효과나 안정성을 충분히 검증받지 않은 채 줄기세포란 이름만으로 마케팅에 활용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식약청은 최근 피부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던 ‘지방줄기세포 화장품’의 유통을 사실상 금지했다. 신체조직으로 만든 지방줄기세포가 소비자 피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배아줄기세포=수정란의 분화과정에서 근육, 뼈, 장기, 뇌, 피부 등 모든 신체기관으로 전환할 수 있어 만능세포라고 불린다. 구체적 장기를 형성하기 이전의 발생 초기단계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모든 세포로 분화 및 증식이 가능하다. 초기단계의 세포특성상 분화능력이 높아서 세포분열을 계속하면서 무한정 자가복제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질병으로 죽은 조직을 대체하기에 충분한 세포조직을 배양하기가 쉽다. 분화능력이 낮고 활용범위가 제한적인 성체 줄기세포에 비해서 치료 효과와 적용범위가 훨씬 크다. 안전한 활용방법만 찾는다면 의료계에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단점은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과정에서 폐기된 수정란 또는 난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윤리적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론상 모든 세포로 분화하기 때문에 체내로 들어간 뒤에 잘못하면 암세포로 발전할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은 폐기된 수정란 또는 환자 체세포를 이식한 난자(황우석 방식)를 이용하는 두 가지로 나뉜다. 여기에 배아줄기세포와 특성이 유사한 유도만능 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이 새롭게 등장했다.

 A.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불임 부부가 시험관 아기 시술의 실패에 대비해 미리 만든 잉여 수정란을 이용한다. 잉여 수정란은 대개 5년 동안 냉동 보관했다가 폐기 처분 직전에 시험관에서 배양해 줄기세포를 추출한다. 국내 연구진도 이 방법으로 줄기세포를 얻어 심장세포를 분화하는 데 성공했다. 어차피 버려질 수정란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윤리적 부담은 다소 덜하다. 그러나 환자와 냉동 수정란 사이에는 유전적 연관성이 전혀 없어 줄기세포를 주입하면 면역 거부반응이 뒤따른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상용화의 핵심 과제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결정한 분야가 바로 수정란 배아줄기세포 연구다. 미국 정부는 올 초 세계 처음으로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척추손상 환자의 치료 임상시험을 허가했다. 미국 제론사는 10명의 척추손상 환자에게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를 투입할 예정이다. 영국 과학자들은 헌혈이 아니라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로 혈액을 대량 생산해서 3년 내 희망자에게 수혈할 계획이다.

 B. 체세포 핵이식 배아줄기세포=흔히 황우석 방식이라고 불리는 배아줄기세포 추출방법이다. 핵이 제거된 난자에 환자의 체세포 핵을 이식한 다음 배양시켜서 줄기세포를 추출한다. 환자의 유전자 특성이 반영된 난자에서 분화능력이 강력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 이론상 면역거부 반응이 없이도 모든 종류의 세포조직을 만들기 때문에 의료분야 파급효과는 제일 강력하다. 단점은 줄기세포의 추출과정에서 여성의 난자를 파괴하기 때문에 가톨릭을 비롯한 일부 종교계의 반발도 가장 크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 한국에서 관련연구가 중단된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중국, 이스라엘, 호주, 스페인 등에서 체세포 핵이식 배아줄기세포의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연방정부가 수정란 배아줄기세포에 연구지원을 결정함에 따라서 이와 유사한 체세포 핵이식 배아줄기 연구를 규제할 명분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몇 달간 황우석 박사의 수암연구소와 차병원이 각각 신청한 체세포 핵이식 배아줄기세포 연구계획을 차례로 불허한 바 있다.

 ◇유도만능줄기세포=성체도 배아도 아닌 제3의 방식으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이 등장했다. 사람의 피부세포에 유전자변형을 가해서 배아줄기세포와 비슷한 분화특성을 지닌 줄기세포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2007년 일본 교토대 신야 야마나카 교수팀이 개발한 기술로서 난자나 배아를 사용하지 않고도 어떤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는 세포를 만든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윤리문제에서 자유롭지만 임상실험에 들어가기는 아직 위험성이 높다. 유전자변형을 일으키는 특정한 바이러스가 에이즈를 일으키는 후천성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같은 구조를 지녀 사람에게 쓰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전문가 견해가 많다.

 ◇한국의 과제=세계 줄기세포 관련 시장은 2012년에 324억달러로 추정되며 앞으로 엄청난 성장가능성을 갖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정책전환으로 여타 국가들도 배아줄기세포의 상업화를 앞당기기 위해 각종 연구규제를 완화하고 지원규모를 대폭 늘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역분화 유도줄기세포 연구에만 지난해 400억원을 집중 투자했다. 유럽연합은 2007∼2013년 줄기세포 연구에 650억달러를 투자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연구는 2006년 이후 350억원에 불과하고 그나마 75%가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치우치고 있다. 한때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지난 2005년 미즈메디병원의 김선종이 황 박사팀에서 맡긴 줄기세포 배양과정을 고의로 망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김선종은 배반포 101개를 넘겨받고도 줄기세포 배양을 못하자 중압감 때문에 황박사팀에 거짓보고를 했다고 검찰조사에서 밝혔다. 2004년 국내에서 발표된 세계 최초의 체세포 핵이식 배아줄기세포(NT-1) 수립도 ‘처녀생식’이라는 서울대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로 사실무근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서울대조사위원장이었던 정명희 교수는 지난달 2일 황우석 관련 법정에서 NT-1이 처녀생식이라 단정한 것은 실수였다고 인정해 파문을 일으켰다. 같은 날 법정에서 정의배 충북대 교수는 실험결과 NT-1은 처녀생식이 아니라 체세포 복제가 맞다고 반박했다. 만약 체세포 핵이식 배아줄기세포가 맞다면 우리나라는 원천특허를 보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제는 줄기세포 사건을 둘러싼 그간의 오해와 진실을 신속하게 구명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