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10여년 동안 치고, 핸디캡이 한 자리로 줄어들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다. 이런 깨달음은 어느 날 갑자기 득도하는 순간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깨달음을 얻고 나면 골프 교습서에 나오는 구절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는다. 벤 호건이 말한 팔뚝의 외회전의 의미를 깨닫는다. 왼쪽에 벽을 쌓으라는 골프 격언이 정말 진리 중의 진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되면 애매모호한 골프 레슨들의 진의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다운스윙 때 왼쪽 히프를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코치도 있고, 왼쪽으로 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코치도 있다. 보기 플레이어 시절에는 어느 말이 맞는지 몰랐는데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되면, 둘 다 맞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임팩트 순간에 왼 손목을 왼쪽으로 강하게 돌려야 한다는 코치도 있는 반면에 그저 자연스럽게 때리면 되지 구태여 왼 손목에 신경 쓸 것 없다는 코치도 있다.
초보자는 헷갈리지만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되면 둘 다 맞다는 것을 알게 된다. 퍼팅도 그렇다. 백스윙할 때 직선으로 빼라고 배웠는데 타이거 우즈 같은 PGA 최고수들은 안쪽으로 둥글게 백스윙을 하고 있다. 도대체 어느 것이 맞는지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둘 다 맞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고려시대 격렬히 맞붙었던 ‘돈오돈수(도는 일거에 깨닫는 것)’와 ‘돈오점수(도는 꾸준히 수행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 두 학설의 대립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필 미켈슨은 돈오돈수, 비제이 싱은 돈오점수 그리고 타이거 우즈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경지로 보인다.
골프 스윙이란 하도 민감해서 왼발 새끼발가락에 힘을 평소보다 조금만 더 줘도 오른쪽으로 직선으로 날아가 버리는 푸시샷이 나오는 것이 상례다. 이렇듯 민감한 골프 스윙을 말로 설명하자니 구구한 설명이 붙고, 비유가 나오는 것이다. 기본기는 다 알고 있지만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하는 단계가 바로 여기다. 이때 좋은 교습서를 손에 쥐고 달달 외우도록 읽어야 한다(벤호건의 ‘모던 골프’, 데이빗 레드베터의 ‘골프 스윙’이 제일 좋다고 소문난 교습서다). 이렇게 외운 교습서는 우리 실력이 올라감에 따라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골프 교습서는 처음 가보는 산을 올라갈 때 내 손에 들려 있는 축적 5만분의 1짜리 지도에 불과하다. 내가 찾고자 하는 샘물을 꼭 집어서 알려주는 책은 없다. 비디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대강의 방향을 알려주는 정도다.
샘물을 찾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다. 일대일 레슨은 조금 낫기는 하다. 등반대장이 있다는 정도. 하지만 이 등반대장도 처음 와보는 산이기는 마찬가지다. 내 스윙은 세상천지의 누구 스윙과도 같지 않기 때문에 혼자 헤매는 것보다는 마음이 든든하다는 정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