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기획] 험한 세상에 `기술 다리` 되어‥

 전 지구적인 경기 침체로 국내 산업 전반에 위기가 찾아왔다. 정부와 산업계는 현 위기를 돌파하고 위기 이후에 대비하기 위한 발걸음이 분주하다. 수출이 주력인 반도체·철강·조선·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은 미래를 내다본 투자를 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사정이 여의치 않다. 당장 기술개발에 투자해야 하지만 짧은 기간에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술도 많지 않고 역량도 부족하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리면 상용화 기술이 앞선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발굴해 낼 수 있는 해외 기술이 많다. 이 때문에 해외에 산재한 원천기술을 활용한 국제기술협력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중소기업의 활발한 해외 기술 협력 활성화를 위해 지식경제부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기술협력거점(GT) 사업을 2회에 걸쳐 싣는다.

 

 #LG전자는 에어컨을 개발하던 중 난관에 봉착했다. 에어컨을 작동할 때 실내 공기와 냉각되는 공기의 차이로 인해 물방울이 제품 냉각장치에 맺히는 문제다. 이는 제품 효율을 떨어뜨리고 부식 등으로 인한 고장 원인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LG전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목한 곳은 러시아였다. 항공기 엔진 효율을 떨어뜨리는 물방울 맺힘 현상을 해결한 러시아의 항공기술에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물방울이 맺히지 않고 바로 분리돼 물방울 맺힘 현상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기술을 국내 에어컨 제품에 적용했다. 러시아가 보유한 원천기술을 국내 제품에 활용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에어컨 1위 브랜드인 ‘휘센’ 탄생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자동차 변속기 검사장비 및 부품 개발 전문업체 ATD는 중국 등과 치열한 경쟁에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기술집약적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러시아 기술을 확보했다. 러시아에서 방사능을 이용, 엑스레이 관련 기술을 보유한 연구기관 정보를 확보하고 세계 2대 핵물리연구소인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부드커 핵물리연구소’와 기술협약을 체결했다. 그 결과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엑스레이 검사를 하는 의료장비를 개발, 전신촬영이 가능하고 관리가 편한 다양한 응용제품군을 시장에 내놨다. ATD는 삼성의료원 등 국내 대표적인 의료기관에 엑스레이 장비를 납품하고 있다. 러시아 기술을 확보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의료 분야 전문 검사장비 기업으로 도약했다.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두 사례는 해외의 원천기술을 받아들여 제품에 적용, 성공적으로 사업화한 사례다. 대기업인 LG전자는 해외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고 세계 1위 제품을 만들었는가 하면 기술형 중소기업으로 한번에 도약했다.

 이처럼 기술경쟁력을 갖춘 혁신형 중소기업으로의 전환이 국내 기업들의 최대 과제가 됐다. 비좁은 국내 시장 공략은 물론이고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서도 더욱 그렇다. 장기적인 기술 개발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도 필요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위기 이후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자고 있는 해외 기술을 받아들여 조속한 상용화 전략을 구체화하는 우회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식경제부와 산업기술재단(이사장 김용근)은 이러한 중소기업의 당면과제를 구체적으로 추진할 GT사업을 올해부터 본격화한다. 특히 최고 수준의 기술역량을 보유한 미상용 원천기술의 보고인 러시아에서의 GT사업이 무르익어 올해 다양한 계획을 속속 구체화하고 있다.

 

 ◇글로벌 기술협력 필요성 증대=최근 발표된 IMD2008 과학·기술경쟁력에서 우리나라는 전년에 비해 과학 경쟁력은 7위에서 5위로 상승한 반면에 기술경쟁력은 6위에서 14위로 크게 하락했다. 또 기술경쟁력 확충을 위한 지원 제도와 효율성이 주변 경쟁국에 비해 상당한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신기술 개발을 위한 지원제도의 경쟁력도 중국 및 일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기술 역량을 확충해 나가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추세인 R&D 글로벌화에 대응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혁신 패러다임이 폐쇄형 혁신에서 개방형(Open Innovation)으로 변화하고 있어 내부 기술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고 열린 자세로 외부와 협력하는 긍정적인 철학이 더욱 중요해졌다.

 대내적으로는 혁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장기적인 투자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국제 기술협력을 통한 단기적인 해외 기술 자원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국제기술협력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애로 요인도 많다.

 산업기술재단 조사 결과 국제기술협력 추진 계획 수립 기업은 39.2%에 달했다. 하지만 분쟁 발생 시 대처 방안(41.3%), 대상국가의 법률적·행정적 문제(36.4%), 대상기관 접촉방법·경로 확보(35.3%) 등에서 상당한 곤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GT사업이란=지식경제부와 산업기술재단이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GT사업은 해외의 원천기술과 이를 활용해 상용화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을 연결하는 네트워킹 사업이다. 이를 위해 북미·중국·일본·러시아·우즈베키스탄·이스라엘·EU 등 7개 지역에 해외기술협력거점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이들 거점은 민관 차원의 기술 협력 수요를 반영한 국제기술협력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일원화된 기술협력 채널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국제 기술협력 지원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정보 공유·인력 교류·공동 R&D를 아우르는 패키지형 통합 지원 체계를 확립했다. 해외의 기술을 국내 기업에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 인력 교류에서 더 나아가 공동 R&D 및 상용화까지 지원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외 기술 수요자를 실시간으로 연계하기 위한 온라인시스템(www.gtonline.or.kr)을 구축, 거점별 기술협력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공동R&D 프로그램 참여 절차(공고·접수·평가 등)를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등 다양한 지원 업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싹’ 틔웠다=현재 7개 거점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GT사업은 러시아에서 결실을 보기 위한 싹을 틔우고 있다. 유라시아 지역 국가들의 과학·산업기술은 기초·원천·군용 기술을 중심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다른 기술선진국에 비해 기술 개방성이 높으며 상용화 기술이 발전한 국내 기업·연구기관과 상호보완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러시아 지역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러시아 GT거점 사업은 현실화하고 있다. 우선 지난 2월 국내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기술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 과학자 3명이 입국을 완료했다. 올해 12개가 넘는 중소기업의 애로 기술을 해결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이달까지 GT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애로기술 조사 접수를 받는다.

 러시아권 연구기관과 원천기술 데이터베이스(DB) 구축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 주요연구팀, 주요 연구자, 핵심 콘택트포인트 등을 담아내고 있으며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법률·문화·성공 및 실패사례 등을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기술 및 기관정보 700여건이 업로드 완료됐으며 올해 말까지 500개 주요 연구기관, 1500개 기술 DB 업로드를 추진 중이다.

 특히 러시아권 우수원천기술 보유기관의 국내 창업 및 국내 기업과 합작법인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오는 9월 설명회를 공동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전략기술 분야 중 개발돼야 할 기술을 러시아권 연구역량을 활용한 한·러 공동R&D 개발 과제도 다음달까지 접수받고 1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미션형 공동 R&D 사업도 추진한다. 러시아에서 70% 이상 개발이 완료된 기술로 국내 기업이 추가 개발후 상용화를 시도하는 ‘원천기술 상용화 개발지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어 러시아와의 GT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김민수기자 mim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