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그린 마케팅의 불편한 진실](https://img.etnews.com/photonews/0904/090408052037_1912596040_b.jpg)
그린(Green)이란 테마는 우리 정부를 비롯해 각국의 정부와 대기업이 앞다퉈 슬로건으로 홍보하면서 친숙함을 더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그린 마케팅으로 거둔 성과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보잘 것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린마케팅은 그럴듯한 친환경 이미지로 포장해 이득만 챙기는 일회성 유행일까. 아니면 기업 활동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는 전환점이 될 것인가.
요즘 기업이든 소비자든 누구나가 친환경 그린제품 및 서비스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미국 내 전체 세제매출에서 친환경 세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가장 성공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평가받는 도요타의 프리우스 역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2% 남짓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공익 차원보다 개인 건강에 직결되는 식품 소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기농 식품이 미국 전체 식료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내외다. 그나마 환경 문제에 적극적인 미국 시장이 이 같은 상황이니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한 우리나라나 여타 국가 시장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기업체는 그린 마케팅을 외치지만 실제 시장에서 친환경 제품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그린 마케팅의 ‘불편한 진실’에 주목하고 이를 뛰어넘기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그린 마케팅이 진부한 외침에 머무르지 않고 대의 실현과 기업의 이익 모두에 기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친환경 소비를 하려는 소비자 의지가 실제 구매로 반영되지 못하게 막는 각종 장애 요인부터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그린마케팅, 왜 구매로 이어지지 않나=그린 마케팅은 소비자가 윤리적으로 소비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차별적인 기능, 감각적인 디자인, 저렴한 가격 등 제품을 구매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드는 여러 조건과 마찬가지로 윤리적 소비자에게는 친환경성과 같은 공익적 가치도 소비의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시장 조사에서 발견된 ‘환경 친화적 구매자’들의 비중만 보면 상당한 규모의 윤리적 소비시장이 존재하는 듯하다. 하지만 조사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대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은 아직 합리적인 소비에 치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경 친화적인 소비에 찬성하지만 가격이나 품질과 같은 다른 조건을 희생하면서까지는 아닌 ‘조건부 환경 친화’라는 것이다.
미국의 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친환경 제품을 구매할 것이라고 응답했던 소수 고객 중에서 단지 14%만이 가격이 더 비싸지더라도 구매 의사를 고수했다고 한다.
이처럼 더 높은 가격에 구매의사가 없다는 것은 결국 아직 그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심정적 친환경 소비자그룹이 가치를 느끼는 조건, 그린소비에 거는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할 수 없다면 명분에 대한 동의와 실제 소비의 격차는 줄어들기 어렵다. 또 다른 이유로는 기업의 부주의한 고객 커뮤니케이션이 꼽힌다. 친환경 소비를 위해서는 종종 기존 소비방식의 변화나 다른 가치의 희생이 필요해서 저항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국내 가전회사가 세제가 필요 없는 세탁기를 출시했지만 사람들은 세제 없이 제대로 때가 빠지겠냐는 심리적 불안 때문에 제품사용을 거부했다. 친환경 신기술이 수용되려면 심리적인 틈(chasm)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다. 따라서 윤리적이든 실용적이든 새로운 소비 방식이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점을 소비자에게 설득해야 한다. 일반적인 마케팅보다 그린 마케팅에서 소비자 교육이나 신뢰 구축에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기업은 ‘환경 친화적’ ‘유해 물질을 사용하지 않았다’ 등 모호하고 엇비슷한 표현으로 제품을 알리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고객 설득에 효과가 떨어지며 자칫 친환경 이미지로 포장해 이득만 챙기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 활동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일부 기업체의 과장된 그린 광고가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더욱 구체적이고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린 마케팅의 한계를 넘어=이젠 환경을 걱정하지만 친환경 소비의 가치에 아직 회의적이고 의심이 많은 다수의 그린 유동층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정지혜 연구원은 이를 위한 실행과제로 “그린 이상의 고객 가치를 제시하고(Customer Value Positioning), 고객의 소비 지식을 바로잡으며(Calibration of Customer Knowledge), 기업의 약속에 대해 고객의 신뢰를 얻는(Credibility) 커뮤니케이션” 등 이른바 3C 관점에서의 노력을 강조했다.
사실 그린 시장은 하나의 별개 시장이 아니다. 대부분 고객은 친환경이라는 대의명분에만 반응하지 않고 ‘다른 조건들이 충족됐을 때’와 같이 조건부로 반응한다. 이런 고객들에게 ‘그린’은 친환경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몇 해 전 불었던 웰빙 열풍처럼 어떤 고객들은 공익보다 개인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친환경 제품을 선택한다. 최근에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거나 내구성을 높여 가격 이상의 가치를 주는 친환경 제품도 등장했다. 이러한 고효율 제품들은 경제성을 추구하는 고객들도 점차 그린 마케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필립스는 절전형 형광등을 처음 개발했을 때 환경 친화성을 특징으로 내세웠다가 고전했다. 이후 형광등의 수명을 훨씬 향상시켜 친환경성 대신 ‘효율성’을 차별화 포인트로 강조해 성공했다.
또 다른 소비층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 그린을 소비한다. ‘에코 시크’로 불리는 이들은 제품의 기능적인 가치뿐 아니라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자신의 친환경 소비를 알리고 싶어한다. 이들에게 친환경 세제나 절전형 TV와 같이 눈에 띄지 않는 그린 마케팅은 덜 매력적이다.
대신 푸에르토리코에 사는 영세 커피 재배자의 권리를 지지하기 위해 커피를 산다거나 양계장이 아닌 방목한 닭의 달걀을 취급하는 버거킹을 이용한다는 등 화제가 되는 마케팅에 더욱 뜨겁게 반응할 것이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의 성공은 탁월한 연비 등 우수한 성능 외에도 차별적인 디자인과 상징적 이미지를 부여한 마케팅 전략도 한몫했다. 카메론 디아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같은 유명 연예인을 적극 활용한 마케팅으로 프리우스를 타면 친환경 운동에 앞장서는 오피니언 리더의 지위를 부여받는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고객이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진리는 그린 마케팅에서도 유효하다. 친환경 제품과 서비스를 보급하려면 전통적인 그린 마케팅에서 벗어나야 하는 역설도 이 같은 배경에서 공감대를 갖는다.
◆그린마케팅의 대안
그린 소비는 고객이 변화를 감내할 수 있도록 공감을 이끌어내는 설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높아진 소비자의 안목에 걸맞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구체적일수록 소비자는 정보에 대한 신뢰를 보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예를 들어 찬물에 녹는 세제 사용 시 물을 데우는 데 필요한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 연간 63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식의 구체적인 수치가 효과를 거둔다. 이는 또 세제 사용으로 절약된 전기가 미국의 상징적인 건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불을 얼마간 밝힐 수 있는지로 환산해서 고객의 소비가 세계를 바꾸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수반되는 심리적 저항을 극복하려면 고객이 수용할 정도로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세제가 필요 없는 세탁기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고도 고전한 업체를 예로 보자. 이 회사는 세탁기는 세제를 많이 넣어야 세탁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소비자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만일 무세제라는 급진적인 개념 대신 탄산나트륨을 ‘대용 세제’로 사용한다거나 세제 대신 물의 ‘이온 성분’이 세탁을 해준다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했다면 훨씬 더 설득적이었을 것이다. 친환경 제품을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서 손쉽게 친환경 제품과 그 부품을 구매해야 그린마케팅이 효과를 거둔다는 설명이다. 애플 아이팟은 비록 친환경 컨셉트로 만들어진 제품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음악소비 패턴을 바꿔 CD 제조에 필요했던 수많은 플라스틱 수요를 없앴다. 이처럼 그린 마케팅이 성공하려면 소비 방식의 혁신이 먼저 필요하다. 이제 그린 마케팅은 한순간의 유행이나 트렌드가 아닌 인류의 생존과 건강한 소비를 위해 지켜야 할 기본 가치가 되고 있다.
정지혜 연구원은 “한때 수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이던 시민권이 너무나 당연한 개념이 된 것처럼 굳이 ‘친환경’이나 ‘그린’이라는 표현이 무의미해질 때까지 그린 마케팅을 향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