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과 학자들은 예상치 못한 유물의 발견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곧 바로 해체조사를 중지하고 사리장엄구의 수습에 들어갔다. 수습 결과 사리공(舍利孔) 안에서 백제 무왕의 혼이 담긴 금제 사리호와 사리, 구슬 등 500여점의 국보급 유물이 발견됐다.
이번에 국보급 유물이 대거 발견된 미륵사지 석탑은 1400여년 전 백제무왕이 지은 사찰 내에 있던 석탑으로, 목조탑의 양식을 띠고 있다. 국보 11호로 지정돼 있으며, 현존하는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장대해 역사적인 가치가 높다.
백제 중흥에 대한 무왕의 기원을 머금고 있는 이 탑은 본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붕괴돼 6층까지 만 남아 있었다. 그나마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콘크리트로 덧칠해 놓아 반쪽 상태였다. 문화재 관리 당국의 안전진단 결과 붕괴가 우려돼 2001년부터 본격적인 해체에 들어갔다. 첨단 시뮬레이션 기법과 과학적인 통계기법이 접목된 보수정비과정을 거쳐 2014년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첨단 IT를 활용해 석탑을 복원 중인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을 찾았다.
◇IT로 1400년 역사 되돌린다=현재 문화재연구소에선 국내 최고 수준의 문화재 보수 전문가들이 모여 석탑 복원작업을 진행 중이다. 첨단 IT를 동원해 과학적인 실측과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탑을 해체하기 전에 탑을 구성하는 석재 위치와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광파측량기 및 광대역 3차원(D) 스캐너 등 장비가 동원되고 있다. 탑을 구성하는 모든 석재의 위치가 3D로 측정된다. 기준점(benchmark)으로 부터 3D 좌표에 따라 거리를 측정하기 때문에 해체 후에도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 있다. 원형과의 오차가 최대 5㎜에 불과하다. 예전에 손으로 직접 실측할 때는 ㎝ 단위의 오차가 발생했었다. 5㎜의 오차라면 백제의 향기를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탑의 해체 작업은 꼭대기부터 이뤄진다. 바닥 및 지하면의 구성은 지표투과레이더(GPR:Ground Penetrating Rader)라는 특수장비를 활용해 파악한다. 매질을 통과하는 전자기파의 속도, 파장, 반사 특성 변화를 측정해 내부 구조를 감지한다. 미륵사지 석탑은 막바지 단계인 1층의 해체 조사 중 사리장엄구가 발견됐다.
해체 조사팀은 수습에 앞서 매납(埋納) 순서와 형태, 특징 등을 파악했다. 이어 노출된 위치와 보존 상태의 기록을 위해 사진 및 동영상 촬영과 함께 정밀 3D 스캔이 실시됐다. 이러한 현장조사 기록을 바탕으로 실측 도면을 작성하게 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김현용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사업단 학예연구원은 “정밀한 스캔을 위해 1㎜ 이하 단위까지 스캔 가능한 초정밀 3D 스캐너로 유물의 상태를 기록했다”며 “2D 분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3D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후 X선형 광분석기를 이용해 금동으로 이뤄진 외부 사리병 안에 금으로 된 또 하나의 사리병이 있는 것도 밝혀졌다.
◇3D 스캐닝과 센서기술이 핵심=해체가 이뤄진 후에는 개별 석재의 형태와 치수, 그리고 제작기법 등을 파악하기 위해 도면과 사진을 기록하고 캐드 프로그램으로 실측도를 작성하게 된다. 석탑 부재의 평면 형상과 전체 형태는 광대역 3D 스캐닝 장비를 이용해 3D 형상 정보로 기록한다.
이 데이터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거쳐 구조해석과 붕괴원인 등의 학술연구 자료로도 활용된다. 또 이 데이터를 이용해 실제와 똑같은 부재를 3D 그래픽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배병선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문화재 원형의 정확한 기록을 위해 IT를 활발하게 접목하고 있다”며 “부분적 기록을 조합해 완성된 입체물을 만들고, 현장감 있는 시뮬레이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상의 공간에서 불량 부재의 비율을 파악하고, 복원 상태를 미리 실측한 뒤 가장 안정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단순히 석탑만 복원해서는 의미가 없다. 석탑 주변의 온도, 습도, 풍향, 풍속, 강수량 등도 기상관측시스템으로 면밀히 분석 및 기록해야 완전한 복원이 가능하다. 수집된 데이터를 통계 기법으로 분석해 석탑의 보존처리와 유지관리방안 수립에 활용하는 것이다.
또 주요 석탑에는 상시계측시스템이 부착돼 있다. 이상 유무를 판단하고 정확한 보수시기를 결정하는 데 이용된다. 일반적으로 탑의 하단 부위에 수평으로 두 개의 광섬유 센서가 설치된다. 기단의 처짐 및 갈라짐 정도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데이터로 기록,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변동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작업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연구소의 직원들의 노력이 2014년에 결실을 보기를 기대하면서 연구소를 빠져나왔다.
대전=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