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융합 IT코리아 신화를 재현한다](2부) 성공 조건①

[방통융합 IT코리아 신화를 재현한다](2부) 성공 조건①

①기업 간 인수합병(M&A)은 진행형, 공정경쟁 체제 구축해야

 방송통신 융합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흥분으로 출발한 2009년 벽두 방송·통신 사업자 진영은 KT-KTF 합병이라는 초대형 이슈에 직면했다.

 지난 1월 20일 전격적으로 진행된 KT-KTF 합병을 위한 이사회를 시발점으로 방송통신 사업자 진영은 찬반 논리를 앞세워 한 치의 양보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이석채 KT 회장이 “KT-KTF 합병을 국내 IT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는 계기로 봐 달라”고 누차 주문했지만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유선통신 시장의 시장지배력을 이동통신 시장으로 확대·재생산하는 거대 공룡의 출현”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LG텔레콤과 LG데이콤, LG파워콤도 합병반대 건의문을 제출했고 케이블TV 사업자도 반대 의사를 개진했다.

 규제기관의 관심도 남달랐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례적으로 토론회와 공개 청문을 마련했다. 정치권의 관심도 마찬가지다. 국회 차원의 정책간담회와 토론회가 개최됐고, 대정부 질의와 상임위(문방위)에서도 화두로 부각됐다.

 마침내 방송통신위원회가 3월 18일 KT-KTF 합병을 인가함에 따라 두 달여간의 갑론을박은 일단락됐다.

 유무선 통신을 막론하고 사실상 ‘과점’ 체제 아래 유선통신 1위 사업자 KT와 이동통신 2위 사업자 KTF 간 합병이 기존 경쟁 구도에 대규모 지각변동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KT와 KTF 합병이 유무선 통신 및 방송 시장 판도에 미치는 후폭풍이 지대할 것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경쟁사업자는 물론이고 규제기관, 정치권이 일제히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KT-KTF 합병은 기업 간 결합 자체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를 신호탄으로 LG데이콤의 LG파워콤 합병, 아직 회사 측에서는 부인하지만 SK텔레콤의 SK브로드밴드 합병 등 새로운 ‘빅뱅’이 잇따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승교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KT-KTF 합병 이후 통신 구도 개편의 일환으로 SK그룹 내 통신 기업 간 인수합병이 예상된다”며 “SK브로드밴드가 SK텔레콤의 우량 자회사인 SK텔링크와 합병하고 내년에는 SK텔레콤에 흡수 합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통 융합의 한 축인 케이블TV 사업자 진영의 합종연횡도 현재 진행형이다.

 케이블TV 사업자 1위인 티브로드는 6위 사업자 큐릭스를 인수했다. 통신사업자와 유효 경쟁을 위한 케이블TV 사업자의 합병을 통한 덩치 키우기는 오래 전부터 예상됐던 시나리오다.

 방송과 방송, 통신과 통신 간 동종결합에 이어 방송과 통신 간 이종결합도 구체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곳곳에서 나올 정도다.

 방송통신 시장의 경쟁 구도 자체가 급변하는 전환점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기업 간 인수합병(M&A)은 기업 차원에서 경쟁력 확보와 확대, 성장을 위한 수단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효율성을 제고, 무한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전개하고 있다. M&A 등 기업 간 결합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다.

 하지만 기업 간 결합은 시장 전체로 볼 때 M&A를 거쳐 독과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는 등 시장 경쟁 구도 변화의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KT-KTF 합병 등 시장 경쟁 구도가 급변함에 따라 규제 기관의 역할과 철학이 달라져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달라지는 시장 구도에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일관된 주문이다.

 방통위가 KT―KTF 합병을 인가하며 경쟁 활성화를 기치로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필수설비 제도개선과 유선전화 및 인터넷전화 번호 이동 절차 개선를 조건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지난 10여년간 해결하지 못한 필수설비 제도 개선 등 공정 경쟁 및 경쟁 활성화를 위한 제도가 마련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 관계가 다른 선후발사업자 간에는 어차피 상반된 주장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제도 개선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선발 사업자는 경쟁 환경 조성에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후발사업자는 경쟁 활성화에 일조하지 못한다고 평가하는 등 엇갈릴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규제기관의 판단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도 개선 못지않게 제도 개선 이후 드러나는 현상이 일시적인지 영구적인지, 아니면 공정 경쟁에 원천적 제약이 존재하는 제도 자체의 실패 요인에 따른 것인지 규제기관은 시장을 더욱 철저하게 관찰·감독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실패 요인 수정에도 과감하게 착수해야 한다.

 합리적 판단을 전제로 선후발 사업자가 상호 윈윈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거쳐 진일보한 시장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도 규제기관의 몫이다.

 무엇보다 유효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선발사업자 규제와 후발사업자 우대를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KT-KTF 합병을 계기로 시장지배적사업자 제도를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현재 시장지배적 사업자 제도는 시내전화와 초고속인터넷(이상 KT), 이동통신(SK텔레콤) 시장점유율 1위 사업자를 시장지배적사업자로 지정, 이용약관을 방통위에 인가받도록 하고 불법행위에는 다른 사업자보다 처벌을 강하게 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KT―KTF 합병으로 유무선 통합이 본격화되는 이때에 시장지배적사업자 제도를 어떻게 운영할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규제기관은 기업 간 결합이 독과점을 강화하고 이에 따른 불공정 행위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독과점 강화를 위한 기업결합은 기업이 독과점 지위에 안주해 기술개발과 경영혁신 등을 후순위로 미룸으로써 기존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피해를 초래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공공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규제 기관의 시장 감시 기능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궁극적으로 공정 경쟁과 경쟁 활성화를 촉진, 투자와 성장이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건 규제 기관 고유의 몫이다.

 사업자가 철저하게 시장 논리에 의해 경쟁하고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도록 규제기관의 비전과 목표를 보다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상직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사업자 간 공정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조성함과 동시에 투자 확대 등 경쟁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글로벌 선진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시장 현실에 맞는 경쟁 상황과 규제 사항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