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P 국내 암호기술 적용, 美에 발목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행정용 인터넷전화(VoIP)에 우리나라 표준 암호기술을 넣는 계획이 미국 측 문제제기로 난항을 겪고 있다. 15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행정용 인터넷전화에 우리나라 표준 암호기술인 ’아리아(ARIA)’를 적용하려던 애초 계획을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국 측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를 들며 국제 표준만 적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보사회진흥원은 지난해 12월 인터넷전화 보안기술에 국제 표준과 아리아를 병행 채택하기로 하고, 사업 설명회 등을 통해 인터넷전화 장비업체에 통보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업체는 인터넷전화 장비에 아리아를 적용하는 기술 개발에 나서 입찰에 참여할 의사를 가진 기업들은 2주에서 한 달 만에 기술 적용을 마쳤다. 입찰을 준비하는 한 대기업에서는 사내 인터넷전화망에 아리아를 적용하면서까지 입찰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 지사를 둔 유럽 업체들도 본사와 협의해 입찰 전까지 아리아를 탑재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리아는 국가정보원의 국가보안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암호기술이고, 행정용 인터넷전화 도입은 행안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전화 90여만대를 인터넷전화로 바꾸는 사업으로 장비 도입가격만 4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 때문에 행정용 인터넷전화 사업은 향후 민간에서의 인터넷전화 사업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보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업체들도 시장 선점을 위해 군침을 흘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시스코 등 미국 업체들이 국제표준만을 적용해야 한다고 반발하자 지난 1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외교통상부에 ’조달기관이 정하는 기술 규격은 국제 표준에 근거해야 한다’는 WTO 조항을 들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스코 등 미국 업체들은 내부 시스템상 아리아 적용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국내 업계에서는 판단하고 있으며, 시스코는 공식적으로 국제 표준만 적용하는 게 회사 방침이라고 못박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 측은 안보문제를 위해 아리아를 국제표준과 함께 병행탑재해야 한다며 안보에 필수적인 사안에서는 기술 규격에 예외를 두는 WTO 조항을 내세우고 있지만, 미국 측은 그럴 만한 이유가 안 된다고 맞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협상 결과에 따라 최종 결정은 국정원이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시점에서 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밝혀 미묘한 해석을 낳고 있다.

외교통상부와 미국 USTR간의 협상이 지지부진 한다면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예정된 인터넷전화 장비 입찰공고도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lkb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