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블랙박스가 내비게이션에 이어 자동차 IT기기 시장을 주도할 전망이다. 자동차종합보험 가입자도 중상해를 입히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자 불안해진 운송사업자들이 보험차원에서 차량용 블랙박스를 앞다퉈 구매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일부 조항이 위헌판결이 나면서 앞으로는 운전자의 과실 여부에 상관없이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운전자가 피해자와 합의할 때 자신의 방어운전을 입증할 필요성이 그만큼 커졌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 올해 차량용 블랙박스 내수시장은 약 10만대로 작년 대비 15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제품성능도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0년대 초반 내비게이션이 운전자층에 처음 보급되던 양상과 흡사하다고 평가한다. 두 기기의 설치목적은 각각 길안내와 사고입증으로 다르지만 운전자가 필요성을 느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PLK(대표 박광일)는 지난주 홈쇼핑채널을 통해서 사고 순간만이 아닌 24시간 녹화가 가능한 차량용 블랙박스(모델명 로드스캔가드)를 시판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 제품은 최대 16기가 메모리를 장착해서 경미한 접촉사고나 주인 몰래 차를 긁는 사건까지 검색해서 찾아낼 수 있다. 이진연 PLK 이사는 “운전자들이 24시간 녹화기능을 지원하는 블랙박스를 요구해서 제품을 출시하게 됐다”면서 “사고를 경험해본 운전자들이 보험차원에서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국내외 제품주문이 크게 밀려 들자 매출목표를 지난해 60억원대에서 올해 200억원으로 높여 잡았다.
그동안 VGA급 화질에 머물던 차량용 블랙박스 시장의 화질경쟁도 치열해졌다. HD급의 선명한 영상이 보편화했다. 유비원(대표 심필하)과 지오크로스(대표 박태성), 벤츄리씨엔씨(대표 이규항)는 올해 들어 고해상도 HD급으로 사고영상을 저장하는 차량용 블랙박스를 잇따라 출시했다. HD급 차량용 블랙박스는 선명한 화질로 사고정황을 구별할 수 있어 운송업체보다 개인용 운전자들이 더 선호한다.
배효수 한국텔레매틱스협회 국장은 “최근 차량용 블랙박스 시장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면 지난 2004년 내비게이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를 연상시킨다”면서 “사고를 낸 운전자가 실제로 차량용 블랙박스를 이용해 유리한 판결을 끌어내는 사례가 나오면 내비게이션과 비슷한 시장 규모를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보급된 내비게이션은 약 600만대, 연간 내비게이션 판매량은 연간 150만대 안팎으로 추정된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