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가는 ‘상생’의 길] (14)하이닉스반도체와 주성엔지니어링 성공사례

[더불어 가는 ‘상생’의 길] (14)하이닉스반도체와 주성엔지니어링 성공사례

 2006년 하이닉스반도체와 주성엔지니어링은 차세대 반도체용 지르코늄 다이옥사이드 공정·장비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는 반도체 회로선 폭을 80나노미터(㎚)급 이하 미세회로 공정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하이닉스·주성 두 회사 공조가 아니었으면 얻기 힘든 결과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양사는 개발내용을 비밀리에 진행했다. 개발책임자였던 김헌도 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은 “저에게도 자세한 내용을 비공개로 진행한 사례”라며 “처음에는 다소 화도 났지만 따질 여유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양사는 여러 회사, 여러 종류 원료를 제공받아 셀 수 없이 많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 최초 방향은 하프늄 옥사이드 쪽에 잡혔다. 그러나 양산 이관 바로 직전에 시작한 비밀 프로젝트인 지르코늄 옥사이드가 주성 연구소에서 긍정적 결과로 나타났다.

 이 정보는 곧 하이닉스에 전해졌다.

 양사는 머리를 맞대고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들어갔다. 그리고 하이닉스에서 지르코늄 옥사이드를 결정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이에 맞춰 하프늄 옥사이드 장비 개조에 들어갔다.

 설계·소프트웨어·개발 등 당시 모든 부서는 비상이 걸려 움직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하이닉스는 양산화 과정에서 80㎚ D램에서 세계 최초로 지르코늄 옥사이드를 적용했고, 이는 국내외 경쟁 소자업체보다 앞설 수 있게 됐다. 공정기술의 정보 분석은 물론이고 측정 장비가 태부족할 당시 양사가 공조해 이뤄낸 성과다. 지금도 양사는 상생협력이 아니었다면 얻기 힘든 결과물이라고 평한다.

 300㎜용 건식식각장치 공동개발도 양사 간의 상생모델로 꼽힌다.

 하이닉스반도체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역시 양사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조가 아니었으면 힘든 결과물이다. 건식식각장치는 웨이퍼상에 회로를 만들고 동시에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반도체 공정의 핵심이다.

 주성이 4년여에 걸쳐 300여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완성한 것으로 2005년 초 하이닉스에 400만달러 상당을 공급했다.

 주성은 당시 기존 직렬안테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병렬공명안테나라는 독창적인 기술을 채택해 균일한 플라즈마를 제공할 수 있게 됐고 이는 300㎜ 이상 큰 면적의 웨이퍼 가공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게 됐다. 2001년 옥사이드 식각장치, 2002년 폴리드라이 식각장치 개발에 성공한 주성은 하이닉스의 지속적인 개발 지원 및 검증으로 제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두 업체 간의 상생협력은 기술적 취약점을 하나하나 보완할 수 있었으며 결국 글로벌 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까지 만들게 됐다. 당시 외국계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에칭장비 시장에서 주성엔지니어링은 당당히 도전장을 낼 수 있게 됐으며, 동시에 종합장비업체로서 틀을 갖추게 됐다.

 건식식각장치에서 보인 성과는 양사 간의 공동개발이 얼마나 큰 시너지를 주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으며, 이는 두 업체가 이후 공동 R&D에 더욱 매진하는 데 영향을 줬다.

 현재 주성엔지니어링은 하이닉스와 차세대 반도체에 필요한 장비 개발 프로젝트를 5개 진행하고 있다. 이는 기존 프로젝트보다 국산화율을 올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프로젝트 결과가 나오면 상당한 상생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이들 프로젝트 가운데 일부는 양사 외에 소재·부품, 정부연구소, 대학 등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로써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하겠다는 취지다. 

 ◆김헌도 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이 말하는 상생협력

 “하이닉스에 필요한 장비를 개발해 주성은 안정된 매출을 확보할 수 있고, 하이닉스는 외국 장비와 비교해 생산성·납기·가격 등의 측면에서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김헌도 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하이닉스와 상생 개발하는 효과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주성은 국내 최대의 장비회사지만 외국 장비회사와 비교하면 매출액과 규모 면에서 여전히 작다”며 “차세대 반도체 공정을 위한 장비는 독자적으로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의 지원이 없다면 개발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동시에 하이닉스 측에서도 상생 개발이 아니었다면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국산 장비를 얻지 못했을 것으로 해석된다.

 상생 과정에서 보다 우수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피땀을 흘린 노력도 공개했다.

 “사이클론 플러스 장비 프로젝트는 최초 부분 검증만 이뤄진 모델이었습니다. 두 대의 장비를 만들어 한 대는 하이닉스에 출하하고 나머지 한 대는 주성엔지니어링 연구소에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을 찾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테스트를 했습니다. 평소 신뢰성 테스트를 500장 정도하는 수준이었으나 당시 대표 지시로 1만장 연속 진행이란 목표를 수립해 펼쳤습니다. 초기엔 수천장도 넘기지 못해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김 부사장은 “당시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면서 이후 “목표로 한 가동률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기업 간 상생이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모방 위주에서 탈피해야 함을 강조했다.

 “모방 제품은 제한적인 시장 진출만 가능합니다.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진출이 가능한 장비를 개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수요 대기업 측에서도 독창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장비를 우대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한국 소자·장비·부품·소재 산업이 골고루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이 됩니다.”

 그는 하이닉스와 현안 논의 시 ‘불만 사항 표출’보다는 ‘문제점 공유와 논의’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을 강조하며 “상생은 서로 어려움과 문제점을 같이 해결하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고 협력사 간의 ‘믿음’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상생전략

 ‘협력사·대학·대기업, 전방위 상생을 추구한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산업계 그리고 학계와 다양한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단순 이벤트성이 아닌 진정한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체계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소 협력사들과 만든 ‘대·중소 상생협력 하이닉스 기술로드맵 공유회’가 대표적이며, 중소기업을 위한 인증팹을 만든 사례도 있다. 2007년 3월부터 장비 및 재료 협력업체 제품의 성능평가 시설을 제공하고 인증해주는 ‘성능평가 협력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내 장비·재료 산업이 성능시험을 위한 자금여력이 부족해 국제시장에서 성능을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감안, 하이닉스가 직접 뛰어들었다. 3차까지 진행한 사업에서 총 30개 품목에 성능을 인증했다. 하이닉스는 이들 인증 품목 가운데 일부를 직접 구매한다.

 김민철 전무(구매실장)는 “상생협력 집중육성품목들은 향후 장비 투자 및 원자재를 구매할 때 우선 순위로 선정된다”며 “지속적인 상생협력으로 집중육성품목들이 세계시장에서도 그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45나노에서 22나노급까지 차세대용 장비 상용화를 위한 ‘원천기술 상용화 개발사업’도 2007년부터 오는 2011년까지 5년간 8개 품목에 진행 중이다. 이는 반도체산업 주도국으로서 위상을 더욱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기틀을 닦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협력사 자금 지원을 위한 상생보증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대기업과 은행이 일대일 비율로 신용보증기관에 특별출연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 보증기관이 대기업 추천 협력업체에 보증지원하고 은행이 이들에 대출하는 형태다. 하이닉스는 이 프로그램에 30억원을 특별출연했으며 이로써 협력사들은 300억원 이상에 달하는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끌어 쓸 수 있게 됐다. 하이닉스 지원이 열 배 이상의 효과를 보는 셈이다.

 대기업 그리고 대학과의 상생 모색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와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인 ‘스핀주입 자화반전 메모리(STT-MRAM)’ 공동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있다. STT-MRAM은 현재 기술적 한계로 여겨지는 30나노급 이하의 초미세 공정이 가능한 메모리로 이를 개발한 국가와 기업이 향후 메모리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양사가 손을 잡았다. 하이닉스·삼성 그리고 한양대 연구인력 30∼40명이 참여한다.

 산학협력의 일환으로 국내외 우수 인력 확보에 적극적이다. 서울대 반도체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해 포항공대 메모리리서치센터, KAIST 신소재 고급인력양성사업, 고려대 나노반도체공학과 등 10여개 대학과 산학협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