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놀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직장은 없을까. 오락과 노동의 이상적 조합은 샐러리맨의 영원한 꿈이다. 노동은 살기 위해 억지로 해야 하는 사회적 책무고 오락은 즐거움을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사람의 속성은 본래 일하기보다는 놀고 싶어하는 ‘유희적 인간’(호모 루덴스, Homo Ludens)에 가깝다. 이처럼 즐거움(오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사회적 생산성(노동)과 결합하려는 시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노동을 즐거운 놀이로 바꾼다. 그게 가능할까.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에 오른 힐러리 경은 왜 산에 오르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말은 “산에 오르는 것은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는 순수한 열정, 어리석지만 고귀한 즐거움은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갖는 소중한 가치다. 최근 놀이에서 발견되는 소비자의 자발적 행동을 사회적 생산성과 결부시키려는 획기적인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강희흔 SK 마케팅&컴퍼니 컨설턴트는 이 같은 노동과 유희의 결합을 ‘Labortainment(노동+오락)’라는 개념으로 규정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레이버테인먼트의 대표적 사례는 검색업계에서 처음 등장했다.
검색 분야에서 사용자의 요구가 점차 높아지는 이미지 검색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려면 사진정보의 이미지에 태그(tag), 혹은 레이블이 달려 있어야 검색 결과의 정확성이 높아진다. 세계 최대 검색업체 구글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하루에만 수만장의 사진에 태그를 달아야 하고 매일 그 수는 증가일로다. 도대체 몇 명의 직원을 투입해야 이 작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구글에 입사한 고급인력이 속칭 ‘노가다’급의 단순 반복작업을 좋아할까.
구글의 한 직원은 이 문제를 천재적 아이디어로 풀었다. 오락 게임을 이용해서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구글의 일을 돕도록 한 것이다. 구글은 누구나 쉽게 참여하는 게임, 즉 구글 이미지 레이블러(Google Image Labeler, image.google.com/imagelabeler)를 만들었다. 온라인에서 두 명의 게임 플레이어를 임의로 묶고 모니터에 뜬 사진의 설명을 입력하게 했다. 두 사람이 동일한 단어를 입력하면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플레이어가 높은 점수를 얻으려면 다른 사람도 이 사진을 보고 공감대를 형성할 적절한 단어를 생각해야 한다. 단순한 규칙의 이 게임이 거둔 성공은 놀랍다. 2006년 7월 기준으로 7만5000명의 사용자가 자그마치 15억장의 사진에 태그 단어를 자발적으로 달았다. 구글의 이미지 검색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네티즌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해서 3D업무를 대행하게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일까. 그것은 온라인에서 일과 놀이의 근본적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은 전통적으로 생산적이어야만 했다. 일은 결과를 산출하는 행위고 대개 의무와 결부되기 때문에 일을 재미있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람, 일 중독자가 시선을 끄는 이유다. 하지만 ‘놀이’는 어떤가. 앞서 언급했듯 이는 그 자체로 존재해온 것이며 흥미와 재미를 얻는 것 외에 특별한 목적이나 의무감이 필요 없다.
유희의 요구도가 증가하고 질 높은 일에 관심이 증대되면서 놀이 자체가 일로 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가수나 댄서 같은 연예계 종사자나 운동선수처럼 일반적으로 유희와 가깝다고 생각되는 직종을 넘어 이제는 경제·IT 등 사회 전반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이 위키피디아 사용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가(What motivates wikipedians?)’라는 논문에서도 위키피디아 사용자는 ‘재미’를 가장 큰 행동 동기로 꼽았다. 레이버테인먼트가 등장하는 영역에서 새 비즈니스가 탄생할 수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최근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은 소비자 및 사용자의 참여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참여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르는 시대에 참여를 이끌어 내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재미라는 점은 중요하다. 자신은 즐겁게 논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생산성으로 연결되는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개인적인 관심으로 영화 리뷰를 블로그에 작성하지만 이것은 특정 사이트나 포털사이트의 정보량을 풍부하게 한다. 수많은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다른 콘텐츠를 링크하고 자막을 달며 지식을 추가하는 위키피디아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예는 폴드잇(FoldIt, www.fold.it)이라는 사이트다. 이 사이트는 단백질 분자 구조를 찾는 일을 모양 맞추기 게임으로 만들어 배포한다. 치료나 연구 목적의 단백질 구조 구명을 위한 작업이 일반 사용자의 게임으로 연결되고, 그 결과는 연구성과로 전이된다. 하지만 레이버테인먼트를 실제로 일어나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엇을 재미로, 무엇을 일로 파악하는지는 순전히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누군가의 돈벌이 도구로 사용된다는 불쾌감을 느끼는 순간 레이버테인먼트는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누군가에게는 힘든 일도 누군가에게는 하지 못해 몸이 달 정도로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레이버테인먼트에서는 ‘맥락’, 즉 콘텍스트의 개념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놀이와 유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하는 사람은 레이버테인먼트 영역에서 더 큰 얻를 찾을 것이다.
이 영역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집어서 말할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이를 찾아가기 위한 방법론은 분명히 나와 있다. 놀이에 사람들을 참여시킬 만한 동기(모티브)를 주어야 한다. 이 동기는 어떤 재미를 줄지 적절한 보상(reward)의 수준을 찾아야 한다. 이미 일을 놀이로 만드는 순간을 찾으려는 시도는 시작됐다. 이 점을 생각해 보자. 당신이 열심히 재미를 추구하는 동안에 누군가는 돈을 벌 수 있는 희한한 영역이 게임, 엔터테인먼트 사업 외에도 많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최순욱기자 choisw@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