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Point] 기고-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지난 연말 경영정보학자들의 최대 학회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닷컴 열풍이 꺼지고 기업의 IT 투자가 대폭 축소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IT 관련 학과가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이에 학회에서도 IT 관련 교육의 미래가 이슈였다. IT 경영학과 교육은 미래의 CIO를 길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CIO의 미래상은 있는지, 아니 더 극단적으로 미래는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내가 만난 최고경영자들은 오늘날 한국의 자동차, 전자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서 국부 창출에 크게 공헌할 수 있었던 것이 1980, 1990년대 최고 두뇌들이 이 분야를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우리나라의 온라인게임 산업이 수출 산업으로 등극하고, NHN 등 온라인 기업이 혁신적 기술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써 국내 시장을 견고히 지킬 수 있는 것은 1990년대 벤처 열풍 때 최고 인재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한 온라인게임 업체 최고경영자는 10년 후 게임 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최고의 인재 공급이 이미 끊겨서라고 한다. 자신은 새로운 신입사원 채용보다는 기존 사원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인재라는 사실은 경제학에서 잘 증명된 사실이다. IT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CIO의 미래상을 우리의 현실에 대입해보면서 우울한 심정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에 이공계 기피현상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경영학 내에서도 IT 경영이 학생들에게 외면당하기 시작한 것도 오래 전 일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IT 관련 직업이 이미 저임금에 고강도 노동을 요구하는 이른바 3D 업종으로 전락했다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 업종의 최고봉인 CIO가 되는 길도 너무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IT 분야 사람에게 그리 부러운 자리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로부터 CIO는 비즈니스를 아는 현업 관리자여야 하는지,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이 더 적합한지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리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많은 기업은 현업 부서장을 CIO로 채택한다. 진정한 경영층으로 대접받는 CIO도 많지 않기 때문에 총명한 IT 사원은 일찍 꿈을 접고 경력을 전환한다. 내가 근무하는 KAIST MBA 과정에는 이렇게 IT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학생이 많이 지원한다.

 파리에서 있었던 학회에서 글로벌 기업의 CIO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기업의 IT 의존성이 크게 존재하는 한 CIO의 미래는 있다고. 다만 그 역할이 크게 변했다. 이제 기술은 많은 부문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전략을 IT 전략으로 전개할 수 있는 역량, 벤더 관리, IT 구매관리, IT 및 프로세스 자산관리와 거버넌스 체계를 디자인하는 역할 등이 기술보다도 더 중요해졌다고 정의한다.

 우리나라가 정말 IT 강국이 되려면 최고의 인재가 IT 그것도 기업의 IT 경영에 몰려들어야 한다. 그날은 바로 현재의 CIO가 멋있고 보수 좋은 최고경영자의 일원이라는 확신을 줄 때 이뤄질 것이다. 이런 확신은 글로벌 기업 CIO가 정의하는 새로운 역할 모델과 전문성으로 최고경영자에게 본인의 가치를 입증할 때만이 가능하다. 종종 IT 부문 관리자들은 최고 경영자의 이해 부족을 불평한다. 하지만 CIO의 경영능력과 기업가치의 입증책임은 본인에게 있지 최고경영자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CIO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해 역량 있는 차기 CIO를 IT 부문에서 길러내야 한다. 그래야 IT 부문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좋은 인재가 몰려 올 것이다. CIO도 IT 경영 교육도 대변혁 시점에 왔다. 모든 인재를 의료, 금융, 공공부문에 빼앗기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IT의 미래도, CIO의 미래도 없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btlee@business.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