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산업기기 디자인의 고단함

[현장에서] 산업기기 디자인의 고단함

 산업기기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사람들의 인식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다, 디자인할 게 없다, 디자인이 구매에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등이다. 디자인 종사자 역시 이런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디자인 프로젝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면 일반 소비재보다 더 어렵고 까다로운 규격을 만족시켜야 하는 요구조건으로 인해 오히려 디자인 전문가적 내공이 훨씬 더 필요한 분야임을 이해하게 된다. 산업기기 제품디자인은 그만큼 어렵다.

 예컨대 우리 회사의 전력제품은 전기 사고 시 일시적으로 15만A의 엄청난 전류가 제품에 흘러도 이를 견뎌야 한다. 그런 특수한 기계적 성능을 만족시키면서도 미적으로 수려해야 한다는 디자인적 소명을 달성하려면 엔지니어는 디자인을, 디자이너는 엔지니어의 관점을 각각 이해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Susol ACB(Air Circuit Breaker)를 디자인할 때의 일이다. 디자인에서는 고광택과 부식의 대비 효과라는 이미지 구현을 위해 핵심부분인 OCR에 고광택 재질을 적용하려 했으나 설계팀에서는 제품의 플라스틱 성형이 어렵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 산업기기는 강도 보강을 위해 유리섬유를 포함하는 재질을 사용하다 보니 대개 표면을 부식 처리하게 되는데 오히려 디자인 효과를 위해 고광택 재질을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디자인에서는 기존품 대비 400% 가까이 향상된 OCR의 성능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라고 설계팀을 설득, 유동성 높은 특수 재질을 적용해 성형상의 문제도 해결하고 디자인 컨셉트도 살릴 수 있었다.

 지금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디자인 강국으로 부상 중이다. 이 같은 사회적 트렌드는 산업기기 디자인에도 긍정적인 신호다. 이는 내가 우리 후배들에게 산업기기 디자인에 대한 푸른 관심을 기대하는 이유기도 하다.

김혜숙 LS산전 디자인팀장 hskimj@lsis.b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