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지난해 10월 31일 기존 유선전화 번호를 그대로 유지, 인터넷전화로 이동할 수 있는 인터넷전화 번호이동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인터넷전화 번호이동 제도가 시행된 지 불과 6개월여 만인 지난 달에는 인터넷전화 번호이동 신청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는 후문이다.
극심한 경기 침체로 가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선전화보다 상대적으로 통화 요금이 저렴한 인터넷전화를 선호하는 가입자가 폭발적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을 위한 복잡한 절차 등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큰 걸음’이라는 게 중론이다.
사례2=실시간 IPTV는 상용화 이후 가입자 확보에 적잖은 애로를 겪고 있다. IPTV 제공사업자는 지상파 재전송만 해결되면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다.
지난해 11월 KT를 시작으로, 1월에는 SK브로드밴드와 LG데이콤이 지상파 재전송을 포함한 실시간 IPTV를 상용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 기존 유료방송과 차별화하는 데 실패하는 등 지지부진 그 자체다. IPTV 제공사업자 3사의 실시간 IPTV 가입자는 30만명에도 못 미친다.
IPTV가 방송통신 융합의 총아로 손꼽히며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 이하의 ‘게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극명하게 교차되는 위의 2개 사례는 인터넷전화 사업자와 IPTV 제공사업자가 처한 현실이 액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인터넷전화 사업자의 기상도가 ‘쾌청’ 그 자체인 반면에 IPTV 사업자의 그것은 ‘먹구름’과 다름없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전화 사업자의 행보에는 청신호가 커졌다.
그동안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을 위한 걸림돌로 작용했던 전화를 거친 본인확인 제도가 폐지되는 등 인터넷전화 번호이동를 위한 절차가 대폭 간소화될 전망이다.
인터넷전화 사업자 진영은 저렴한 인터넷전화로의 가입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인터넷전화 저변이 갈수록 확대돼 궁극적으로 주류로 자리 매김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숨기지 않을 정도다.
IPTV 제공사업자 측은 이와 정반대다.
실시간 IPTV 가입자 확보 및 콘텐츠 차별화를 위한 이렇다 할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PTV 지상파 재전송 비용을 둘러싸고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의 압박이 예사롭지 않다.
IPTV 제공사업자 3사는 작년 10월부터 KBS·SBS·MBC와 ‘선(先) 전송 후(後) 정산’ 방식에 합의했다. 하지만 IPTV 가입자가 늘지 않고 적자가 커지자 지상파 재전송 비용 부담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상파 3사가 “IPTV 제공사업자 3사와 합의해 맺은 기본협약에 따라 지상파 방송을 제공했다”며 “합리적인 설명도 없이 계약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성토하고 나섰다.
IPTV 제공사업자는 제한된 예산 아래 과도한 지상파 재전송 비용은 다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대한 수신료 지금 여력을 축소, PP 활성화 등 콘텐츠 활성화 정책에 역행할 수 있다고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IPTV 사업자의 요금인하 여력 또한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위 사례는 사업자가 처한 현실뿐만 아니라 규제기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인터넷전화 번호이동 제도 시행에 앞서 찬반을 둘러싸고 사업자 간 양보 없는 갑론을박이 전개됐다.
하지만 규제기관이 저렴한 인터넷전화로 가계 통신 비용 부담을 경감하고 경쟁 활성화를 촉진, 이용자의 다양한 통신서비스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분명한 목표 아래 인터넷전화 번호이동 제도를 본격화했다.
규제기관이 소기에 목적한 정책 목표가 실현되고 있다는 점은 인터넷전화 번호이동 신청자의 폭발적인 증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IPTV 제공사업자의 의욕과 열정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IPTV 자체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의 동반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IPTV 재전송 비용이라는 난제에 직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IPTV 성공을 위한 규제 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전폭적인’ 수준이라고 회자된다.
사업자 간 계약 문제로 규제기관이 개입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신성장동력으로 예상되는 IPTV 조기 정착을 도모하고 유료방송 시장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제기된다.
제각각으로 진행되는 협상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가격 등 일정 수준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사업자 간 자율 협상이라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제한된 범위에서의 중재라는 의미다.
이해 관계가 첨예한만큼 규제기관의 결정이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예상했던 바다. 하지만 IPTV가 초고속인터넷과 CDMA에 이어 IT코리아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자리 매김할 것이라는 유망주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IPTV가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미래 성장동력으로의 자리 매김이 저절로 가능한 것은 절대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 ‘국회’에 발목 잡힌 ‘통신’>
기존 이동통신 사업자로부터 통신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동통신 재판매, 가상이동망사업자(MVNO: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 제도의 연내 도입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SK텔레콤이 보유한 800㎒ 주파수 일부 대역을 경쟁 사업자에게 경매로 재할당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주파수 경매제’ 또한 유명무실화될 위기에 놓였다.
MVNO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과 주파수 경매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전파법 개정안이 4월 임시 ‘국회’에서 표류한 끝에 좌초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동통신 재판매 제도 도입으로 제4의 이동통신사 진입을 허용, 경쟁을 촉진하고 통신 요금 인하를 노렸던 정부 정책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하반기에 주파수를 재할당하려던 당초 계획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그뿐만 아니라 차기 임시국회를 기대할 상황도 아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신문·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법안 처리에 따른 정치공방에 묻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신은 철저한 규제산업으로, 통신사업자는 철저하게 규제에 의거, 경영 전략과 세부 전술을 짤 수밖에 없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규제기관의 철학에 따라 일희일비하곤 한다.
하지만 규제기관 못지않게 통신에 영향을 끼치는 집단이 입법기관인 국회다.
MVNO 제도 도입의 근거가 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지난 17대 국회에서 논란 끝에 파기된 데 이어 18대 4월 임시 국회에서도 처리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안 자체가 유야무야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도 적지 않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예비 MVNO가 1년 이상 처리를 기다리고 있고, 전파법 개정안은 이동통신 사업자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통신 로드맵이 국회에서 길을 잃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지적한다. 통신과 관련된 각종 사안의 정책 결정이 늦어지는 데 국회가 한몫하고 있다는 혹평도 제기된다.
정파를 떠나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 경쟁 활성화 및 이용자 복지 향상 등 통신이 본연의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본연의 몫이 아니냐는 목소리를 여의도에 전달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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