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

[SF 세상읽기]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감정이 사실은 연인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최음제 성분의 땀에 의한 것이었다면? 또는 당신이 느끼는 종교적 도취의 순간이 신이나 천사에 의한 것이 아닌 단순한 미생물에 의한 호르몬 자극의 결과일 뿐이라면? 또는 어려운 사람을 보는 당신의 동정심이 어떤 테러 집단이 살포한 바이러스의 결과일 뿐이라면? 만일 당신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감정은 인간이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사고과정에 반응한 결과물이며 인간은 기억과 감정을 바탕으로 자의식의 존재를 확인해왔다. 특정 상황에서 특정한 감정은 인간 의식의 산물이며 개인의 특성을 결정짓는 요소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이 인간 스스로의 의지와 정신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기제에 의한 것임을 깨닫게 된 개인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SF 작가들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외부적 원인이 드러나는 상황, 또는 기술 발전으로 인간 감정의 통제·강화가 가능해지는 상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개인이 겪게 될 충격과 혼란을 전망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약물로 우울증 등을 약화시키고 있고, 계속되는 연구로 뇌 활동의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현실성 있는 과학적 상상이다.

 이러한 작품 중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으로 그레그 이건의 ‘오셔닉(Oceanic)’이다. 그레그 이건은 우리나라에서도 ‘쿼런틴’으로 많이 알려진 작가로 무신론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 인간 감정 기제 탐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오셔닉’에서 종교 중심 사회에 사는 개인이 느끼는 종교적 희열감의 정체가 결코 단순한 미생물의 자극에 의한 결과임을 알게 된 후 겪는 혼란을 그렸다.

 그레그 이건은 ‘내가 행복한 이유’에서는 종양 치료 후유증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이 수천명의 뇌를 분석해서 만들어진 의뇌를 이식받아 감정을 다시 느끼고, 자유롭게 여러 감정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을 그렸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원인이 자신의 기억과 경험, 성격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들’의 종합적 성격이라면, 또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감정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개인이 겪는 변화와 혼란을 넘어서서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에 의한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그린 작품도 있다. 브라이언 스테이블포드는 단편 ‘어느 성화학자의 생애’에서 주인공 ‘카사노바’가 개발한 이성 유혹을 위한 최음제 성분의 땀이 세상을 평화롭게 바꿔 권투선수들이 서로를 때리지 못하고 울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경기장을 나가고, 전쟁과 테러가 소멸되는 것을 블랙코미디로 그려냈다.

 낸시 크레스는 단편 ‘제1막’에서 한 테러집단에 의해 살포된 동정심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세상에 가져오는 혼란을 그렸다. 측은지심이라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본성의 원인이 내 본성의 발로인지 바이러스에 의한 ‘증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SF 작가들은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일반 문학에서는 다루기 힘든 감정에 대한 인간의 인식 변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훌륭하게 다루고 있다. 스스로의 감정에 가끔씩 알 수 없는 낯섦을 느껴본 독자라면, 한번쯤 SF를 보며 자신의 감정의 발로는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홍인수 SF 번역가 iaminsu1@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