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의 여파가 잦아들지, 더 심각해질지 모르는 비상경영 환경에서 기업은 긴축적인 예산운용을 통해 어둠이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의 지출 중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은 IT예산은 절감대상 1순위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IT투자를 무조건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IT투자를 얼마나 할 것인가?
최근 매킨지의 조사결과(How CIO should think about business value, Mckinsey Quarterly, 2009년 3월)에 따르면, 일괄적인 IT예산 감축은 오히려 기업의 효율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기업 CIO들과 인터뷰를 통해 매출액 대비 IT투자 비율과 영업비용 비율을 비교해 본 결과 IT투자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업의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산성도 향상되고 IT투자금액도 차츰 줄일 수 있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IT투자를 축소하거나 과소투자하는 경우 생산성은 시간이 흘러도 개선되지 않거나 심지어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CIO는 일시적인 IT투자 축소로 인한 단기적인 비용절감 효과와 IT투자 확대를 통한 장기적인 기업 발전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비 새는 지붕에 돈을 아낄 수는 없다. 금융기관의 경우 외부환경과 상관없이 항상 신뢰할 수 있어야 하며, IT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업무수행이 불가능하게 된 현실에서 IT부문에서의 안정성과 보안성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핵심시스템과 다양한 지원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한편, 정보보안을 강화하고 각종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IT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경제위기 등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 속에 가장 신뢰를 받아야 할 금융기관이 적정한 IT투자를 유지하지 못해 금융사고가 발생하거나 고객 불편을 초래할 경우 IT예산 절감액의 수십배에 달하는 유무형적 손해는 물론이고 기업의 존립도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비가 새려는 지붕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IT부서의 생산성을 점검해야 한다. 기업은 선별된 IT투자를 적극 추진하는 한편, 조직의 생산성을 제고해야 할 IT부서 내부에 비효율적인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 IT시스템과 IT인력으로 구분해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는 IT부서가 독단적으로는 할 수 없고 현업부서와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다.
첫째, IT시스템 자체의 생산성을 점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상화 기술을 활용한 서버통합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운용 중인 시스템 자원의 낭비요소를 제거하고 오래된 시스템은 리모델링 실시나 환경변화를 반영해 구축 당시의 생산성을 되찾아야 한다. 아울러 IT프로젝트 추진 시 현업 담당자를 포함한 사전검토 조직을 구성함으로써 사업 타당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검증절차를 통과한 사업은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한편, 새로운 시스템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시스템 구축단계부터 사용자들을 적극 참여시키고 IT담당자들이 주기적으로 현업부서와 커뮤니케이션을 해 애로사항을 파악하는 등 최대한 사용자 중심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IT인력의 생산성을 점검해야 한다. 사용자가 시스템 사용방법뿐만 아니라 업무처리 방법마저 IT부서로 문의하는 빈도가 높아짐에 따라 IT담당자의 전화응대 시간은 점점 늘어나게 되고 본연의 IT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IT담당자 한 명이 개발한 업무나 프로세스가 몇 천명의 직원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만큼 전화응대로 인한 조직 전체의 낭비요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IT부서는 단순문의를 처리해 줄 창구를 단일화해 IT담당자의 업무집중도를 높여주고 신규 시스템 가동 전에 사용법에 대한 직원교육을 철저히 실시하는 등 문의사항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황금알 낳는 거위는 어려울 때라도 사야 한다. IT의 역할이 경영 지원에서 경영 선도로 변화하면서 기업이 추락할지, 도약할지가 상당 부분 IT에 달려 있는 현실에서, 금융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의 IT투자를 감축 또는 보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적절치 않다. 기초체력이나 잠재능력과 상관없이 시장 침체로 인해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경우, 지금이 오히려 IT투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현금주머니를 단단히 붙들고 있기 보다는 미래를 내다보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구입하는 결단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고일영 기업은행 IT본부장(부행장) iyko@ib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