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신문 부수 검증을 위한 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신문부수공사) 제도가 정부의 종합대책 마련으로 제자리를 찾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ABC 제도란 신문, 잡지 등의 매체가 자진해서 보고한 유가 및 발행 부수를 객관적으로 조사해 확인, 공개하는 제도로 신문·잡지에 대한 공정한 광고단가 책정의 기준이 돼 왔다. 지난 89년 창립된 사단법인 한국ABC협회는 일간신문사와 잡지사, 광고주와 광고회사 등 280개사가 가입해 있는 ABC 공식 기구지만 그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유명무실 논란에 휩싸여왔다. ABC 제도의 핵심인 부수검증에는 지난해 69개 일간지 가운데 5개지만 부수검증에 참여했을 정도이며 특히 중앙일간지는 2005년 이후로는 부수검증에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결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만 ABC 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유일한 나라로 남아있다. 신문사들이 부수검증 참여를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은 검증결과가 광고단가를 낮춰 광고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간지들은 여기에 덧붙여 ABC 검증결과가 공정거래법상 신문고시 위반 증거로 활용되는 사태도 우려하고 있다. 그나마 주간신문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부수검증 참여사가 2005년 19개사에서 2008년 82개사로 늘어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ABC제도 개선 종합대책을 마련, 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과 잡지에 대해서만 정부 광고를 배정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유명무실했던 ABC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선도적 조치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 한국언론재단은 ABC부수검증 결과에 따라 현재 3등급으로 구분된 정부광고료를 7등급으로 세분화해 정부광고료를 차등 지급할 계획이다. 정부 광고액은 연간 2천500억원으로 전체 광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규모로 미미하지만, 정부가 인쇄매체에 대한 최대 단일 광고주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부 관계자는 “정부의 선도적 조치로 ABC 제도가 정착되면 기존의 비합리적인 광고단가 책정 체계가 개선돼 부수 기준에 의한 광고 관행을 정착시킬 수 있게 되고 광고시장 전체에도 경제적 파급 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특히 문화부는 지역신문발전기금과 ABC 참여 여부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역신문발전특별법의 기금 지원조건 관련 조항을 ‘ABC 가입’에서 ‘ABC 가입 및 부수검증’으로 바꾸는 방안이다.
아울러 유료부수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정가의 80%에서 50%로 완화해 ABC 검증에 대한 자발적 참여도를 높이는 방안도 이번 종합대책에 포함됐다. 유료부수 기준 가격을 미국은 정가의 25% 이상으로, 영국, 프랑스, 일본은 50% 이상으로 책정한 것을 감안한 것이다.
또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인증위원회’를 신설, 공정성을 높이는 한편 부실신고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실사 지국 범위를 확대, 공사 수수료를 증액 부과하는 등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한국ABC협회 박용학 사무국장은 “그간 신문 부수를 속이는 행위가 매체로서 신문에 대한 매력을 떨어뜨리고 불건전한 언론매체를 키우는 자양분이 되면서 광고주를 쫓아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부수검증과 공개로 마이너 매체들이 광고수익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점이다. 특히 최근 미디어법안 논의와 관련해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공산도 적지 않다. 박 국장은 이에 대해 “매체별로 단기적으로는 이익과 불이익이 있겠지만 신문업계 전반에선 이익이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부수가 적은 매체는 특정 독자층을 대상으로 기사내용과 지면편집 등에 질적인 차별화를 이룰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일부 유력지들이 광고수입의 극심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일환으로 ABC 부수 검증에 참여키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010년 10월로 예정된 국제ABC연맹 서울총회를 앞두고 국내 신문업계가 ABC 제도를 어떻게 정착시켜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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