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에도 가지 않고, 라운딩도 많이 하지 않으면서 80대 초·중반 스코어를 지키는 비결이 ‘실전 연습법’이다. 다른 말로 ‘테마가 있는 라운딩’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골프를 치러 나가는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오늘의 테마를 정한다. 예를 들면, 다운 스윙 시 양쪽 겨드랑이를 붙이고 내려온다. 또는 체중 이동을 정확히 한다. 상체가 목표방향으로 딸려 나기지 않도록 상체를 지킨다. 혹은 아이언 샷에서 허리 굽힘 각도(전경각도)를 끝까지 지킨다 등 그날 실천해야만 하는 테마를 딱 한 가지 정한다. 여러 개의 테마를 설정하면 하나도 지킬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꼭 한 개의 테마만을 설정해야 한다.
지난주 내 테마는 상체가 목표방향으로 딸려가지 않도록 상체를 지키는 것이었다. 이 테마를 설정했던 이유는 그 전에 라운딩을 하면서 상체가 목표방향으로 딸려 나갔기 때문이다. 임팩트 순간에 클럽 페이스가 열려서 드라이브 샷이나 아이언 샷에서 슬라이스가 발생했고 상체가 딸려 나가면서 정확한 임팩트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거리가 짧아지는 문제도 생겼다.
상체를 지킨다는 테마를 가지고 라운딩에 나섰던 지난 주말. 첫 홀에서 티샷을 준비할 때 나는 모든 관심을 상체를 지키는 데 쏟았다. 티잉 그라운드 밖에서 연습 스윙을 여러 차례 하고 첫 티샷을 때리기 직전 소리를 내서 ‘상체를 지킨다’고 세 번 중얼거린 다음 볼을 때렸다. 볼은 잘 날아가서 페어웨이 정중앙에 안착했다. 거리도 마음에 들고 탄도도 좋았다. 150야드 남은 세컨드 샷. 다른 플레이어들이 세컨드 샷을 하는 동안 나는 페어웨이 가장자리에서 7번 아이언을 들고 ‘상체를 지킨다’고 중얼거리며 연습 스윙을 10여 차례 했다. 내가 칠 차례가 돌아왔을 때 또다시 세 번 중얼거리고 세컨드 샷을 때렸다. 역시 볼은 잘 맞아 그린에 안착했고 아까운 버디 퍼트를 놓치고 첫 홀에서 파를 기록했다. 전반 나인을 이런 식으로 플레이한 결과 스코어는 아주 좋았다. 4개 오버, 40타.
그러나 중간에 잠깐 쉬면서 맥주를 마신 게 화근이었다. 후반 들어 갑자기 난조가 찾아왔다. 티샷한 볼이 좌우로 날아가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간신히 스리 온, 투 퍼트, 보기로 막아가면서 서너 홀을 돌았다. “대체 왜 이러지?” 그러다가 갑자기 상체를 지키는 것을 그새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차! 또 잊어버렸구나.” 캐디에게 볼펜을 빌려 장갑 손등 쪽에 ‘상체 지킴’이라고 썼다. 어드레스를 하면 자연히 보이는 위치다. 잊어버릴 염려가 없다. 괜찮은 스코어로 라운딩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동반 플레이어 한 사람에게 슬쩍 내 장갑을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씩 웃으며 자기 장갑을 보여주는데 거기에는 ‘고들개(고개 들면의 약자)’라는 글씨가 매직펜으로 쓰여 있었다. “비가 오면 지워질지도 몰라서….” 우리는 서로 손뼉을 두드리며 크게 웃었다. 이른바 박장대소를 이루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