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TV 2.0 TV빅뱅, 거실이 진화한다] 화질을 잡는자가 시장을 바꾼다

[디지털TV 2.0 TV빅뱅, 거실이 진화한다] 화질을 잡는자가 시장을 바꾼다

 TV를 사는 이유 중 가장 으뜸은 화질이다. 보다 선명한 영화를 위해, 사실감 넘치는 스포츠를 보기 위해 소비자는 TV를 사고 또 교체한다. 화질을 빼놓고는 TV를 이야기할 수 없으며 화질은 곧 TV의 역사다. 화질이 변하는 순간, 전 세계 TV 시장은 요동쳤고 승자와 패자가 판가름났다.

 

#트리니트론, 30년 브라운관TV를 지배하다

1968년 소니에서 독자적인 브라운관 방식의 ‘트리니트론 TV’가 나왔다. 소니는 이 TV 하나로 30년 이상을 군림했다. 브라운관은 독일에서 개발됐다. 독일 스트라스버그대학의 칼 브라운 교수가 1897년 개발한 음극선관(CRT)이 시초다. 그의 업적을 기려 음극선관은 브라운관으로 바뀌었다. 브라운관을 TV로 상용화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 RCA는 1931년 전자식 텔레비전을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후발주자였던 소니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화질 기술인 트리니트론으로 단 번에 판도를 뒤집었다. 일반적인 컬러 브라운관 TV는 전자빔이 3개고 섀도마스크를 사용한다. 하지만 소니는 하나의 전자총에서 3가지 빔이 나오도록 했고 섀도마스크 대신 어퍼처그릴를 택했다. 소니는 화질을 잡는데 성공했다. 트리니트론은 기존 TV들이 보여주지 못한 선명하고 화사한 색감을 구현했다.

세계는 열광했다. 트리니트론은 TV와 컴퓨터 모니터 등에 적용되며 전문가들이 쓰는 TV란 이미지도 쌓았다. 전 세계 총 2억8000만대가 판매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소니가 지난 2004년 내수용 생산을 중단할 때까지 트리니트론은 워크맨과 함께 한 소니 그 자체였다.

 #평판 디스플레이, 대변혁의 시작

국내 TV업체들은 트리니트론의 위력을 몸소 체험할 수 밖에 없었다. 소니는 성공에 취해 있었다. 화면이 커질수록 부피가 늘어나고 무게도 증가하는 브라운관 TV의 단점에도 소니는 트리니트론 기술의 영속성을 자신했다. 그 사이, 뼈아픈 경험을 한 국내 기업들은 1990년대 들어 모험을 시작했다. TV 화질 측면에서 브라운관 TV가 백열등이라면 형광등 수준인 LCD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LG전자는 1987년부터, 삼성전자는 1991년부터 LCD에 대한 연구개발(R&D)을 시작했다. 양사는 모두 1995년에 1세대 LCD 라인을 가동하면서 LCD 시장에 진입했다. 당시에는 샤프·도시바·히타치·마쓰시타 등이 노트북용 시장을 석권해왔던 시기였다. 사업 초기에는 모든 부품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야 했고 기술마저도 일본에서 들여왔다. 그러나 국내 LCD 업체들은 기술력 부족을 적기 투자와 패널 사이즈 표준화로 일본 기업을 압박했다. 일본 기업들이 11.4인치를 표준 규격으로 삼고 있을때 삼성전자는 12.1인치를 표준규격으로 밀어붙여 표준화를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3세대 라인을 투자한 1998년 대형 LCD 분야에서 1위를 달성했다. 또 일본 기업들이 LCD 공급과잉을 이유로 5세대 투자를 주저할 때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5세대 투자를 진행, 세계 1위 기반을 닦았다.

그 후 일본 기업들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차세대 라인을 주도했고 LCD 시장의 키는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소니·파나소닉 등의 브랜드 명성 때문에 영원히 1위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던 TV 완제품 분야 역시 그렇게 허물어졌다. 

#새로운 도전과 과제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TV 부문 세계 1위를 기록했고 LG전자는 지난해 일본 샤프와 네덜란드 필립스를 한꺼번에 밀어내고 세계 5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특히 LG전자는 세계 2위 소니와의 격차도 3%대로 좁혀, 올해 LCD TV 2위 자리를 놓고 박빙의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양사는 화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LED 백라이트 LCD TV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LED를 백라이트로 쓰면 같은 LCD TV라 하더라도 색 재현력이 우수해진다. 현재 CCFL 방식이 SRGB 기준 70∼90%대의 색상만으로 표현하는 데 비해, LED 방식은 이 수치가 110%대로 크게 올라간다.

하지만 경쟁사도 움직이고 있다. LED보다 한 단계 상위 개념인 OLED TV를 적극 상용화해 반격을 노리고 있다. 특히 소니는 과거의 실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OLED TV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OLED는 LCD와 달리 소자가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LED와 같은 백라이트를 필요로 하지 않고, 이론상 LCD보다 응답속도가 1000배나 높아 잔상 없이 깨끗한 동영상을 보여준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현존하는 ‘꿈의 디스플레이’로 불린다.

현재는 LCD TV가 시장의 주류라는데 이견이 없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의 전망도 밝다. 하지만 30여 년을 지배해온 트리니트론도 그런 자만심 속에서 사라졌다. TV 산업의 역사는 화질에 따라 달라진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