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엔지니어 A모씨는 근무하던 회사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임박하자 다른 직원과 함께 퇴사해 창업을 했다. 1년 후 신제품을 개발했는데 전 직장에서 영업비밀 침해혐의로 형사고발했다. A모씨가 설립한 회사의 거의 모든 자료가 압수되는 과정에서 전 직장의 연구자료도 일부 발견됐다. A모씨는 회사영업을 중단하고 형사처벌과 수십억원대 손해배상의 위험에 처했다.
#전시행사를 담당해온 B모씨는 퇴사 후 유사한 전시사업을 추진하다가 몇 주 전에 근무했던 회사로부터 영업비밀 침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당했다. B모씨가 사업계획에서 고객명단까지 광범위한 영업 정보를 유출했다는 것이다. 법원에서 가처분 소송이 받아들여지면 B모씨는 이미 홍보 작업까지 완료한 전시회를 취소하고 회사는 부도나게 된다.
경기불황으로 많은 직장인들이 퇴사해서 창업을 하거나 관련 회사로 이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전에 다니던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회사 입장에선 아무리 한솥밥을 먹던 동료라도 수년간 힘들게 축적한 노하우가 경쟁사에 흘러가게 좌시할 수 없다. 직장인도 할 말은 있다. 노하우를 발휘하기 위해 결국 유사한 업종에서 일해야 하는데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수년간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건 부당하다. 법률전문가들은 직장을 옮기려는 직원이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당하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키라고 충고한다.
1. 회사의 자료는 회사의 자산이다: 창업이나 이직시 빈 손으로 나온다는 것을 전제로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전 직장에서 쓰던 노트북, 외장하드, 메모리스틱 등은 퇴직 전에 상사 또는 후임자에게 반납하고 가능하면 확인증을 받아두자. 수사 과정에서 전 직장에 취득한 자료가 집 또는 다른 회사에서 발견되면 매우 힘들어진다.
2. 독자 개발한 제품이면 기록을 꼼꼼히 남겨두라: 전 회사에서 직접 관여한 제품과 유사한 제품은 가능한 취급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회사를 옮긴 후 유사한 제품을 생산, 판매할 경우 독자 개발한 제품임을 입증하는 관련기록을 모두 남겨야 한다. 법정에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3. 평소 영업비밀의 범위를 정확히 규정하라: 많은 회사들이 어떠한 자료가 영업비밀인지 직원들에게 명확히 알리지 않다가 법적 논란에 휘말리곤 한다. 회사와 직원이 별도로 영업비밀 침해방지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일단 합의한 계약서에서 명시된 자료에 대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체도 영업비밀을 지키려면 평소 정보관리에 충실해야 법정에서 권리를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체가 서류, 도면, 파일 등에 책임자 외의 접근을 차단하거나 비밀유지 각서를 받는 등 꾸준히 노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법률사무소 재인의 김영국 변호사는 “법원은 직장에서 스스로 체득한 업무 능력은 회사가 아닌 직원 본인 것으로 인정하는 추세다.”면서 “영업비밀이 어디까지인지 회사와 명확히 합의하고 행동한다면 한솥밥을 먹던 동료와 법정에서 싸우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