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Point/비즈IT칼럼/CIO의 위기

View Point/비즈IT칼럼/CIO의 위기

 우리는 흔히 ‘병은 소문을 내야 한다’는 말을 격언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 말 중에 포함된 ‘병’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로 대치한다면 이 문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의한 후 이를 널리 알려 여러 사람으로부터 지혜를 모아야 해결책이 강구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인문학이 아닐까 한다. ‘인문학이 위기에 빠져 있다’는 얘기가 식자들 간에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지가 3∼4년 전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의 인문학은 상상력과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장점을 보유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대두되어 CEO 조찬모임의 핵심 과정이 되고 있다.

 그러면 디지털 기회 지수와 전자 정부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국가 경제 전체의 산업공헌도가 30%에 달하는 우리의 IT는 세계 최강으로 문제가 없는 것일까. 특히 IT가 기업 경영에 어떻게 활용되고 경쟁력 제고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의 측면에서 말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의 교수인 맥아피는 60년 전에 슘페터가 주창한 바와 같은 ‘창조적 파괴’ 현상이 1990년대 중반부터 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경쟁 양태는 IT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맥아피는 그 요인으로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디지털화됨에 따라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세스가 개발되면 동 프로세스를 기업의 IT 인프라에 내재시켜 조직 전체로 순식간에 확산시킬 수 있게 됨에 따라 단기간에 해당 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기업들이 이와 같은 IT 잠재력을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실제로 활용하고 있는가. 삼성SDS와 캡제미나이가 국내외 500개 기업의 CIO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글로벌 CIO 서베이 2008’에 의하면 현업 및 경영진이 IT를 경영혁신을 추진하는 핵심 요소라고 인식하는지의 질문에 한국 CIO 중 76%가 ‘적극적 동의’ 또는 ‘동의’라고 밝혀 해외 CIO의 72%와 유사한 응답률을 보였으나 IT를 실제로 비즈니스에 접목하고 있는지 묻자 60%의 CIO가 부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CIO가 회사의 경영전략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비율은 8%, 회사의 경영진이 IT 전략 수립에 적극 참여한다는 비율은 7%로 해외 CIO의 28%, 14%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한국 CIO들의 70%는 자사의 IT 펀더멘털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응답을 보여 글로벌 기업 CIO 중 56%만이 같은 대답을 한 것과 비교할 때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이 조사 결과는 글로벌 기업의 CIO들이 신상품 개발이나 신시장 개척 등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혁신 대상으로 초점을 옮겨가고 있음에 비해 국내 기업은 시스템 운용은 잘 이루어지고 있으나 IT 혁신 활동의 중점이 비용 절감 및 내부 운영의 효율화에 주로 한정되고 있어 IT와 비즈니스의 융합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CIO가 명실상부한 ‘Chief Innovation Officer’로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의 포인트는 무엇일까. CIO에게 요구되는 변화 중의 하나는 기업의 임원으로서 CEO, COO, CFO를 비롯한 많은 임원에게 공통으로 요구되는 바와 같이 통찰력을 갖추는 것이고, 이는 최근의 추세에 맞추어 철학·인문학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다양한 어젠다에 많은 사람과 더 많은 대화를 하려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로 요구되는 변화의 방향은 CIO가 T자형 인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CIO에게 세 번째로 요구되는 자질은 스토리텔링의 기술이다. IT인프라를 활용해 혁신이 성취되면 고객이 해당 기업과 접촉(contact)하는 데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회사 내의 임원과 직원의 업무 프로세스에서 어떠한 변화가 발생되는지를 이야기(story)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에 익숙한 프로세스의 변경에는 고통이 따르는 것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변화와 혁신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위해서는 이해에 근거한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CIO는 IT 부문 외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데이터 아키텍처 등의 양식을 벗어 버리고 실제 시스템의 사용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CIO 스스로 IT가 제공하는 솔루션이 기업을 경쟁업체와 차별화할 수 있는 결정적 승부구(winning shot)인 전략적 무기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데 확신을 갖는 것이 요구된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가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이야말로 IT 부문 및 CIO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소문을 내고 적극적으로 처방전을 구함으로써 IT를 경기 침체를 돌파하는 혁신 수단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닌가 한다.

윤재봉 삼일PwC 대표 jbyoon@sa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