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SF의 역사](https://img.etnews.com/photonews/0905/090513042933_1372700586_b.jpg)
이따금 SF에 대해 강의를 하다 보면 ‘SF의 역사’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SF의 역사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SF에 관해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SF를 알고 보고 싶다면 좋은 작품을 선별해서 살펴보고 이를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때마다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SF의 역사가 생각보다 길다는 점(넓게 보면 신화나 전설에서 시작한다)과 매우 다양하다는 점(우주선이나 로봇이 나오는 것만이 SF는 아니다)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SF는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문제가 나오게 마련이다.
‘SF는 무엇이다’라고 많은 이가 이야기하지만 사실 여기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나 평론가 같은 전문가만이 아니라 SF를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이들 개개인마다 제각기 다른 의견이 존재하고 그때그때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생각해 보자. 이제까지 내가 이야기한 몇몇 작품인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나 영화 ‘그날 이후’ 같은 작품은 SF가 맞다. 많은 이가 익히 생각하듯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심지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스터’나 ‘태권브이’ 같은 작품도 SF가 맞다. 그렇다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에 몇몇 사람은 “과학적으로 대단한 무언가가 나오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정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역사상 유명한 SF 중에는 굉장한 과학 같은 건 나오지 않는 게 많으니 말이다. 가령 1947년에 나온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당시 기술로 불가능한 것은 거의 없다. 오래전에 나온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이 작품을 고전 SF라고 말하면 의아해 하는 이가 많다)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SF란 진정으로 무엇인가. 여기서 한번 아무도 SF라고 생각하지 않을(하지만 나는 SF라고 보는) 한 이야기를 꺼내보자. 그리스의 전성기를 넘어, 미케네 문명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 이야기는 고대 세계의 전설적인 발명가와 그의 아들을 주역으로 한다.
천재적인 발명가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섬에서 미노스왕을 위해 여러 도구를 만들어주고 미궁을 설계하기도 했지만, 왕의 노여움을 사서 높은 탑에 갇히고 만다. 하지만 새를 보고 하늘을 나는 법을 연구한 그는 새의 날개를 촛농으로 붙여 아들과 함께 탑을 탈출하는데, 아들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잊어버리고 태양에 지나치게 다가간 끝에 고열 때문에 촛농이 녹아 떨어져 죽고 만다.
흔히 ‘이카루스 신화’라고 알려진 이 이야기는 그리스의 다른 수많은 신화와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발명가(지금으로 보면 과학자)’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며, 제우스 같은 신과 관련된 어떤 특별한 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이달로스가 만들어낸 ‘하늘을 나는 도구(날개)’는 신의 권능을 이용한 것도 마녀의 기술을 이용한 것도 아니다. 단지 새를 관찰하고 모방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과학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이카루스가 날 수 있었듯, 같은 도구를 이용하면 ‘누구나’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하늘을 나는 이야기가 많지만, 다이달루스의 도구를 뺀 모든 것은 특별한 힘을 필요로 한다. 메두사의 피에서 깨어난 페가수스도, 헤르메스신의 날개도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법과 과학은 바로 이런 차이를 가진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도구’를 썼기 때문에 이카루스 신화는 SF라고 볼 수 있을까. 여기에서 또 하나 매우 중요한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카루스가 ‘태양에 너무 높이 다가간 나머지 촛농이 녹아서 날개가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이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은 새의 깃털과 촛농이라는 도구를 써서 실현되지만, 마찬가지로 촛농이라는 도구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항공 사고는 바로 이렇듯 과학적 상상력에 의해 이루어져 완성된다.
하늘을 정말로 날게 됐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하는 상상력이 이야기를 이끌어냈다고 할까.
이렇듯 SF는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작품이다. SF로 우리들은 아직 가보지 못한 우주 저 먼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고, 작아진 세계를 체험하며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며 발생하는 문제에 대비할 수 있다.
이카루스 신화가 ‘하늘을 날 때의 주의’를 알려준 것처럼…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장 sflib200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