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야기] 샤토 라피트 로칠드

 몇 년 전 크리스마스 가정용 영화 중에 ‘패릴리맨’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스크루지 스토리를 현대판으로 구성한 영화였는데 잔잔한 감동을 줬다. 주인공 니컬러스 케이지가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자기가 과거에 즐겨 마셨던 라피트 로칠드를 주문하면서 그동안 가장 마시고 싶었다고 독백하는 장면이 있다.

보르도 5대 1등급 와인 선호도에서 동양에서는 샤토 마고와 샤토 라투르의 인기가 높은 편이지만 서양에서는 단연 샤토 라피트를 좋아한다. 1855년 와인 등급분류 당시 1등급 와인 중에서 첫 번째로 꼽혔으며 1982·1986·1996·2000년도 와인은 로버트 파커가 100점을 줄 정도로 대단한 와인이다. 루이 15세 당시 이 와인이 리슐리에 경과 마담 퐁파두르에 의해 왕실에 소개돼 왕과 그 가족이 즐겨 마심으로써 왕의 와인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와인업계의 거물 니콜라 드세귀 후작이 샤토 라투르, 샤토 라피트, 샤토 칼롱 세귀 등 최고급 와인을 소유하며 보르도 와인의 명성을 크게 올린 공도 크다.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가장 사랑했던 와인은 샤토 오브리옹, 샤토 라피트, 샤토 디켐이었다 하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생테스테프와 맞닿은 포이약 북서쪽의 작은 언덕지대에 있으며 카베르네 소비뇽 70%,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 각 15%의 비율로 배합하나 연도별로 블렌딩의 비율은 다소 변한다. 전 세계 와인 중 가장 세련되고 우아하며 완성미가 뛰어나다.

그러나 이 와인이 특징이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마고는 여성스러움과 화려한 향이 특징적이고 라투르는 강건한 남성미가 넘치는 중량감이 있으나 라투르는 평범하다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와인 블렌딩의 절묘한 배합으로 밸런스가 완벽해서 그렇게 느껴질 뿐이며 깊고 짙은 루비색에 아몬드와 제비꽃 향기가 은은히 퍼지는 라피트를 한 모금 입에 물면 입안이 꽉 찬 느낌이 들면서 균형미와 우아함을 느끼게 되는 훌륭한 와인이다.

몇 년 전 나는 여러 사람과 동승해 자가용 비행기로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간 적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라피트 로칠드 1990년산을 기내에서 열어 감동을 받으며 마신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는 덕분에 석 잔 정도를 마실 수 있는 영광을 누렸는데 구조가 견고한 풀 보디의 잘 짜인 타닌과 길게 이어지는 피니시가 아주 특이했다.

충분히 디캔팅을 할 수 없어서 최고 상태의 와인을 마실 수는 없었으나 비행기 안에서 마신다는 특수여건이 기분을 한껏 들뜨게 했다. 이 와인은 서너 시간 디캔팅을 해야 제 맛을 내게 되므로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라피트 로칠드의 세컨드 와인은 카루아데 드 라피트(Carruades de Lafite)다. 포도 재배에서 양조까지 전 과정이 퍼스트 라벨과 동일하나 포도나무의 수령이 어릴 뿐이다. 따라서 라피트 로칠드의 약간 젊은 와인을 마시는 기분으로 세컨드 와인을 마시는 것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권장할 만한 것이다.

구덕모 와인앤프랜즈 사장 www.wineandfriend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