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차세대 슈퍼컴 개발 좌초 위기

 일본 정부가 주도해 민관 협동으로 진행해온 차세대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가 참여사 이탈로 중도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14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NEC가 차세대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에서 발을 뺄 것으로 알려지자 히타치제작소·이화학연구소 등도 동요,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차세대 슈퍼컴퓨터 계획 프로젝트는 2010년 말까지 초당 1경회(1조회×1만) 연산처리 속도를 가지는 세계 최고 속도의 슈퍼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화학연구소와 NEC·후지쯔·히타치제작소 등이 참여해왔으며, 총 1150억엔가량의 비용을 투입할 예정이다.

프로젝트 이탈 계획을 처음 밝힌 곳은 NEC다. 불황기 손실을 줄이기 위해 사업 및 인원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NEC는 13일 프로젝트 탈퇴 의사를 밝히고, 이주 안에 공식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프로젝트 완성을 위해 회사가 부담해야 할 100억엔 이상의 비용이 부담스러운데다 이 사업에서 단기 이익창출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슈퍼컴퓨터 사업을 비효율적인 사업으로 분류해 사업을 축소하거나 완전 철수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NEC의 슈퍼컴퓨터 사업은 1990년대 후반 미국과 일본 간 통상마찰 빌미를 제공했을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자랑해왔다. 일본 해양연구개발기구가 보유한 NEC 슈퍼컴퓨터 ‘지구 시뮬레이터’는 2002∼2004년 3년 연속 세계 최고의 연산처리 속도를 기록했다.

히타치제작소도 동조했다. NEC의 이탈소식을 접한 히타치제작소 역시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고 14일 선언했다. 유일한 정부 쪽 연구기관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화학연구소도 이날 차세대 슈퍼컴퓨터 개발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핵심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NEC와 히타치제작소가 이탈하게 되면 프로젝트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다. 사실상 철회 의사를 밝힌 셈이다.

갑작스러운 프로젝트 회원사들의 연이은 이탈 소식에 일본 정부만 답답해졌다. 정부는 차세대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가 일본의 정보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중요 프로젝트인만큼 NEC의 탈퇴 소식이 전해진 상황에서도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하루 만에 총 4개 회원사 중 3개사가 줄퇴장을 선언하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아직 공식 견해를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 남은 후지쯔만으로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대단위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조만간 프로젝트 재검토 계획을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