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미국의 교육전문가인 마크 프렌스키는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였다. 컴퓨터·휴대폰·인터넷 등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를 ‘원어민’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세대라는 의미다. 30세 이하, 혹은 디지털 기술을 손쉽게 접하며 자란 세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인스턴트메시징,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위키, 블로그는 없어서는 안될 일상의 도구다. 웹 2.0이 이렇게 태동했고, 그 사상과 기술이 기업으로 스며들면서 엔터프라이즈 2.0이 주목받고 있다.
몇년 전부터 디지털 네이티브는 경영혁신의 중요한 소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웹 2.0에서 보듯이 향후 비즈니스 혁신에서 디지털 네이티브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금까지 기업은 혁신을 촉진하는 세 가지 구성요소, 즉 사람·프로세스·기술 중 프로세스와 기술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가트너는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5단계 인간 욕구’ 이론을 토대로 디지털 네이티브를 고려한 기업 혁신이 필요하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내놨다. 매슬로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1단계)→안전 욕구→소속감 및 애정 욕구→존경 욕구→자아 실현’의 순서로 발전한다. 가트너는 현재 IT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일반적으로 1, 2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에게는 이미 3단계에 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오는 2012년에는 4단계, 2018년에는 5단계로 진입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네이티브가 비즈니스 혁신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도록 IT부서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는 게 가트너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 확보, 임직원 개개인의 창의성 보장, 수평적 조직 문화 창출 등이 이제 IT부서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트너의 이런 시나리오는 설득력이 있다. 그동안 엔터프라이즈 2.0 프로젝트가 보여준 속성을 보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엔터프라이즈 2.0에서는 기존 IT 프로젝트의 전형적 패턴인 ‘계획적 확산(roll-out)’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블로그든 위키든 사내에서 소규모로 시작했다가 전사 혹은 협력사로 자연스럽게 확산된다. IT부서는 본격적인 확산 단계 혹은 그 이후에 개입하는 게 공식이다. 성공한 엔터프라이즈 2.0 프로젝트가 이런 공식을 지켜서가 아니라 그들의 성공을 돌이켜보니 이런 공식이 나온 것이다. 위키 성공모델인 미국 CIA나 제약회사 화이자, IT업체 EMC 등이 대표적인 예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강요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즐거움과 자발성이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미국 IT업계에서 CIO나 IT오피니언 리더들의 소셜 네트워킹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트위터 열풍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전유물이었던 트위터가 이제는 부모 세대인 ‘디지털 이주민(immigrants)’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에서 디지털 네이티브를 고려한 혁신 활동에 대한 담론도, 혁신 리더들이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활발하게 이용한다는 소식도 찾아보기 힘들다. IT 혁신을 주장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아직도 과거 ‘공식’에 매몰돼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디지털 네이티브와 소셜 네트워킹은 더 이상 인터넷 업계만의 이슈가 아니다.
박서기 전략기획팀장 겸 CIO BIZ+팀장 sk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