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미디어 전쟁(media war)

[이머징 이슈] 미디어 전쟁(media war)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소탕 작전에 참여하는 우리 해군의 활약상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청해부대는 지난달 16일 아덴만에 도착한 후 해적에 쫓기던 각국 상선 4척을 잇따라 구출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번 해군의 성공적인 작전수행은 단순히 국력과시 차원을 넘어 우리 군의 작전방식 전반에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화력보다 미디어에 더 의존하는 21세기 전쟁의 새로운 양상이 시작된 것이다.

 청해부대의 해적소탕작전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구조요청을 받은 문무대왕함은 저격수가 탑승한 링스 헬기를 현장에 긴급 출동시킨다. 상선에 접근하던 해적선은 무장 헬기가 접근하면 지레 겁을 먹고 도주한다. 지금까지 총 한 방 쏘지 않았다. 경고사격 태세만 갖춰도 위험한 상황은 거의 종료된다.

 하지만 해적 소탕작전의 제일 중요한 단계가 남아 있다. 모든 작전 영상은 즉시 본국으로 전송되고 저녁 뉴스에서 청해부대의 활약상은 시청자들에게 보여진다. 총보다 HD캠코더가 더 중요한 무기로 활용되는 셈이다.

 요즘 해군은 지구 반대편에 함대를 파견한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빈약하게 무장한 해적들을 상대하는 저강도 작전으로 거의 매주 엄청난 홍보효과를 올리고 있다. 북한의 로켓 발사, 개성공단 문제로 자존심이 상한 우리 정부 측에서 북한상선을 구출한 청해부대가 얼마나 예쁠지 짐작이 간다. 당장 문무대왕함 장병들의 파병수당을 10% 인상한다는 소식이다. 내년도 해군의 예산증액도 떼놓은 당상이다. 국방부는 때맞춰 군사포토 웹사이트(photomil.co.kr)를 신설해 국군의 멋진 모습을 네티즌에게 퍼뜨린다.

 우리 국군의 해외파병사에서 영상 미디어를 이처럼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는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군사작전의 실황중계. 미국 CNN에서 접하던 미디어 전쟁을 한국군도 제대로 모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21세기 전쟁은 TV로 생중계되는 전투장면이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주목할 현상은 한국군이 막 도입한 영상 미디어가 대국민 홍보수단을 넘어 군 내부 지휘체계와 작전방식에도 확연히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못 보는 작전은 의미도 없다.

 이번 소말리아 해적소탕전은 한국해군의 작전교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그동안 해군함대에서 가시권을 벗어난 원거리 작전상황은 특수부대의 보트나 헬기가 현장에 접근한 다음 음성통화로 보고했다. 당연히 현지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적함의 동향은 기껏해야 레이더 좌표상의 점으로 나타날 따름이었다. 반면에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된 문무대왕함은 수십㎞ 떨어진 해역에서 특수전 헬기가 전송하는 구출작전의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함장은 모니터에 비치는 해적선의 동향을 관찰하면서 헬기에 직접 작전지시를 내린다. 청해부대가 올린 네 건의 선박구출작전 중 세 건은 헬기에서 군함으로 생중계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비쿼터스 해상작전을 벌인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12월 초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휴대형 영상중계장치가 해군에 납품되면서 시작됐다. 아이디폰이 개발한 영상중계장치는 병사가 상시 착용할 정도로 작고 가볍지만 초당 30프레임으로 D1급(720×480) 동영상을 반경 10㎞ 이내에 전송할 수 있다. 헬기처럼 높은 위치에 올라가면 동영상의 전송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주파수 암호화 기능을 탑재해 적군이 전파를 탑지해도 쉽게 해독하지 못한다. 바닷물에 젖어도 끄떡없는 방수구조와 충격에 강한 설계는 기본이다.

 아이디폰은 3년 전부터 군사용 영상중계장치를 개발했고 지난해 중국어선을 쫓는 해양경찰과 특수부대에 납품한 바 있다. 청해부대의 UDT대원들도 소말리아에 갈 때 작전상황을 녹화, 전송하는 휴대형 영상장비를 희망했다.

 처음 해군당국은 쓸데없는 장비에 예산을 쓴다며 시큰둥했다. 하지만 해상구출작전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해군장교들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 그동안 전혀 못 보던 광경. UDT대원들이 피납상선에 접근해서 올라타는 긴박한 상황이 컬러영상으로 생중계되자 시각적 충격을 받은 것이다. 헬기 위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영화 속 장면이 푸른 바다에서 똑같이 펼쳐진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군사작전에서 적을 눈으로 보는 것은 신속, 정확한 판단을 돕는 굉장한 이점이다.

 해군은 적의 동태를 보여주는 요술상자의 효용가치를 단박에 눈치챘다. 그리하여 한국이 자랑하는 첨단IT는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된 청해부대가 훌륭히 임무를 수행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미사일, 함포뿐 아니라 눈으로 보는 영상미디어도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첨단무기라는 사실을 제대로 체험한 것이다. 청해부대가 보유한 수준의 콤팩트한 영상중계장비는 아직 일본 해상자위대도 갖추지 못했다. 세계에서도 미국, 영국, 러시아 해군 등이 유사한 성능에 훨씬 크고 무거운 장비를 쓰고 있다.

 미군은 군사작전에서 영상미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장 잘 이해하는 집단이다. 주한미군은 고해상도로 촬영한 북한군 동향을 한국군에게 조금씩 보여주면서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지난 2002년 3월 아프가니스탄 상공을 배회하던 프레데터 무인정찰기는 SEAL대원이 탄 헬기가 지상에 추락해 탈레반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미국 본토의 지휘관에게 전송해 충격을 던졌다. 요즘 아프간과 이라크 상공에는 실시간 영상중계를 위한 무인정찰기 활동이 크게 늘었다는 소문이다.

 한국군도 전시작전권 환수를 앞두고 1m급 고해상도 정찰 위성, 고공 정찰기를 이용해서 전략영상정보 수집기능을 착실히 키우고 있다. 각개 병사를 1인 미디어로 활용하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전투헬멧에 무선카메라를 내장시켜 후방 지휘본부에서 작전상황을 감시하는 것이다. 적지 깊숙이 침투해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종심작전도 머지않아 수색병이 아닌 무인 영상미디어로 대체된다.

 저격수의 스코프 화면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저격통제시스템도 최근 국산화됐다. 여러 명의 인질범을 상대할 때는 모든 저격수가 각자의 목표물을 정조준하는 순간을 잡아내는 타이밍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순간을 놓치면 구출작전은 수포로 돌아간다. 저격통제시스템은 여러 저격수가 조준하는 장면들을 지휘관이 한눈에 모니터링하게 돕는다. 지난달 12일 미군 특수부대의 저격수들은 미국인 선장을 억류한 해적 3명을 한꺼번에 사살하는 고난도 작전을 성공시킨 바 있다.

 ◇미디어전쟁의 파장과 진화방향

 영상미디어의 확산은 군대 지휘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말단사병에서 장성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던 군대의 보고체계는 적나라한 영상미디어 앞에서 비효율성을 드러낸다.

 시각적 충격은 보고 단계의 간소화를 촉발하고 특히 전투상황에서 문서, 음성통화보다 훨씬 효율적인 영상미디어 의존도가 높아진다.

 앞서 소개한 문무대왕함의 사례를 보면 함장은 헬기에서 중계되는 작전영상을 경험한 후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헬기에 지시하는 빈도가 늘었다. 어쩌다 영상중계장비가 고장이라도 나면 심각한 문제로 간주될 것이다. 전쟁터에 나선 장수가 눈이 잘 안 보이면 낭패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간 보고체계를 담당하는 하사관, 위관급 장교의 역할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동안 현장 지휘관이 행사해 온 권한의 상당부분이 새로운 시각 통제능력을 확보한 상급자에게 올라가는 셈이다.

 군대 보고체계에서 영상미디어는 정보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도구지만 가끔 정보 왜곡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장군이 아무리 선명하게 작전영상을 본다고 해도 현장에서 뒹구는 병사만큼 전투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요컨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 군이 영상미디어를 군사작전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기술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현장 지휘관의 판단과 권한을 인정해주는 새로운 전술 교리를 개발해야 한다.

 소말리아 작전에서 위력을 발휘한 군사용 영상미디어는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까. 육해공군 모두 다양한 컨셉트의 첨단 영상장비 보급대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수색작전에 나간 병사가 발견한 적군의 수상한 동태를 중대본부도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화질도 HD급으로 개선되고 출력은 더욱 높아진다. 우리 해군이 한번 더 해외파병을 나간다면 모든 작전영상은 위성중계로 진해 해군사령부, 국방부, 청와대 지하벙커에까지 전송될 것이다. 사진병 대신 전투장면을 중계하는 야전PD라는 새로운 병과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북한 경비정이 어느 날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서 우리 해군함정과 숨막히는 대치상황을 벌일 때 HD캠코더로 작전영상을 중계하는 병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은 강력한 무기체계보다 첨단 영상매체가 위력을 발휘하는 미디어 전쟁을 우리 군이 경험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군은 앞으로 무기체계의 하나로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법, 미디어 이해력(literacy)까지 갖춰야 한다. 미래의 전쟁은 첨단 미디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쪽이 승리한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