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칼럼] 프린팅 공정에서의 분자경제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적 시각이 버무려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를 보았는가. 여기에는 주인공인 존 앤더튼 형사와 법무부 검사가 자동차 제조공장에서 서로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이 매우 흥미롭다. 자동차가 5초에 한 대씩 만들어지는데 공정 프로세스에 따라 수소·탄소·질소·산소 분자들을 프린팅 방식이나 스프레이 방식으로 인쇄하거나 뿌려 플라스틱·철·옷감 등으로 만든다. 이것을 다시 레고처럼 쌓아 올려 순식간에 자동차 한 대가 나온다. 너무나 멋진 이런 장면은 순수한 상상력만의 소산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미래학자, 나노공학자들이 미래에 등장할 것으로 보는 분자 경제, 분자 제조공정의 한 단면이다.

 프린팅을 활용한 분자 제조공정은 쉽게 말해 특정 제품을 도면에 따라 분자를 스프레이 방식으로 층층이 쌓아서 입체 완성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독특한 아이디어지만 종이나 필름 면에 인쇄하는 현재의 프린팅과 원리적으로는 그다지 다를 게 없다. 일반 프린터에서 그림이나 글자를 나타내는 잉크 한 방울도 비록 우리 눈에는 평면으로 보일지 몰라도 분자, 나노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나게 두터운 3차원 구조물이다. 잉크 방울을 수십만, 수백만 겹으로 쌓아 좀 더 두터운 입체를 만든다고나 할까. 게다가 제조공정 자체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3차원 프린터 기술은 미국 3D시스템스의 처크 훌이 1986년 발명했다. 이 기술은 이미 항공우주·자동차·건축·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제품 제작에 활용되고 있다.

 물론 현재의 3차원 프린팅은 제품을 만드는 재료가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신형 핸들을 디자인한다고 했을 때 컴퓨터로 설계한 뒤 일단 3차원 프린터로 찍어내 본다면 모양과 구조가 같기 때문에 성능과 외관의 문제점을 따져볼 수 있지만 실제 제품과 달리 프린터로 찍어낸 핸들은 플라스틱 재질이라 완벽한 비교는 불가능하다. 소재의 중요성이 더해가는 최근의 추세에 비추어 보면 이런 아쉬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노 공정, 나노과학이 발달하면서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는 분자 제조공정, 분자경제가 조금씩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올해 4월 나노 레터스지에는 미국 UCLA와 스탠퍼드대학 연구원들이 탄소나노튜브를 3차원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초소형 박막형 축전기를 찍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 게재됐다. 아직 기초적인 수준의 연구 결과지만 미래의 기대감을 품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먼 미래엔 나노공학의 창시자 에릭 드렉슬러가 그의 저서 ’창조의 엔진’에서 예견한 대로 만능 조립장치(유니버설 어셈블러)가 가능한 3차원 프린터가 등장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디지털 요리법(프로그램)을 내려받으면, 그 요리법에 따라 분자나 폴리머 고분자들을 3차원 프린터에서 프린팅하거나 스프레이하는 방식을 이용해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곳에서 제조해 사용하고 먹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맛까지도 분자 차원에서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는 세상,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차원용 아스팩미래기술경영연구소장 wycha@StudyBusin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