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SF와 펑크 사이언스 정신

[SF 세상읽기] SF와 펑크 사이언스 정신

 SF에는 ‘펑크’로 표현되는 일련의 계보가 있다.

 펑크라고 하면 쉽게 말해서 급진적이고 사회 관습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스타일을 일컫는 말인데, 이런 정신이 SF적 상상력과 결합하면 때로는 놀라운 지평이 새롭게 펼쳐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1984)’나 닐 스티븐슨의 ‘스노크래시(1992)’ 같은 ‘사이버펑크’ SF소설이 없었다면 오늘날 인터넷 정보통신 사회의 모습은 꽤 달랐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이버펑크는 컴퓨터 정보통신과 네트워크라는 형태로 우리의 실제 현실이 됐지만 펑크가 꼭 미래지향적인 과학기술하고만 결합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시대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발상을 끌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1980년대 말에 생겨난 ‘스팀펑크(steampunk)’가 대표적이다.

 스팀펑크는 증기기관(스팀을 이용한 기계장치) 시대, 즉 19세기의 과학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대체역사적 이야기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스팀펑크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지만, 영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나 ‘젠틀맨스 리그’ 또,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틀란티스’나 일본 애니메이션 ‘스팀보이’ 등이 대표적인 스팀펑크 스타일이다.

 스팀펑크의 특징은 전기나 전자력보다는 증기력, 또는 넓은 의미에서 기계적 메커니즘이 주요 과학적 장치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스팀보이에 등장하는 현란한 기계장치들의 정교한 묘사를 보면 전자공학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놀라운 과학적 발상을 펼쳐 보일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기계식 아날로그 문명의 미래상을 살짝 들여다보는 기분인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전자식 디지털 문명이 아닌, 기계식 아날로그 문명이 가상적으로 활짝 꽃핀 세상이야말로 스팀펑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세계일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펑크’의 탄생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가 스팀펑크, 20세기는 사이버펑크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나노펑크, 또는 바이오펑크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나노 기술이나 유전공학 기술이 일반에게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다수 대중의 손에서 자유롭게 조작된다면 세상은 인터넷 사회의 도래 못지않은 격변을 겪게 될 것이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펑크란 사회학적 의미의 체제 반항이나 일탈 정서와는 좀 성격이 다르다. 그렇다고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처럼 확신범인 것도 아니다.

 ‘스팀보이’의 주인공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시도해보는, 과감하다 못해 무모한 실험 정신이라고 보는 편이 가장 가까울 것이다.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이런 실험 정신은 돌연변이처럼 화려하게 등장해 유전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새로운 종의 탄생과 분화로 이끄는 진화의 프로세스와 비슷한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SF가 낳은 펑크 사이언스 정신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실로 SF적 상상력은 열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블랙박스, 혹은 판도라의 상자인 것이다.

박상준 오멜라스 대표 cosmo@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