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구글이 수용을 거부함으로써 문제가 된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 논쟁이 뜨겁다.
2006년 12월, 정통망법 개정으로 도입된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인터넷의 익명성을 악용해 언어폭력과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타인 정보 유출 등의 정도가 심해지자 법·제도적 장치로서 만들어졌다.
당시 인터넷에 악의적 댓글(악플)을 다는 네티즌을 효과적으로 추적하고 수사할 수 있다는 전제로 인터넷 사이트 회원 가입 시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실명확인 기관(주로 신용정보회사)에서 확인받는 절차를 의무화했다. 결과적으로 수사기관은 악플을 게시하는 사람을 압수수색하거나 통신사실을 조회할 때 ID를 기반으로 해 인터넷 서비스 제공회사에 정보를 요청함으로써 손쉽게 해당 ID를 사용한 피의자의 이름과 주민번호 등 신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듯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행정을 펴나가는 정부 쪽에서는 편이성이 증대되고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으나 사회적 역작용을 무시하기 어렵다. 먼저 인터넷 사업자가 개인정보인 주민번호를 수집하는 일을 합리화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를 수집하지 않고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던 상황에서 10만명 이상의 접속을 유지하려는 사업자는 주민번호 수집을 전제로 하는 시스템 기획을 당연시했다. 거의 대부분 인터넷 사이트의 주민번호 수집이 트렌드가 됐다. 주민번호가 가치를 가지게 됨으로써 대량으로 주민번호가 유통되고 주민번호로 실명이 확인된 ID의 거래가 횡행했다.
현재 국내에서 인터넷 포털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주민번호 또는 외국인 등록번호가 필요하며, 14세 미만 가입자는 부모의 주민번호도 필요하다. 해외에서 가입할 때 주민번호 또는 휴대폰 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민번호로 가입된 ID는 상품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결국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행정 편의성을 드높인 사례인 동시에 시장에서 주민번호 유통을 유발하게 한 책임이 크다. 무분별한 주민번호 수집과 제3자 제공 및 유통이 정통망법을 수차례 개정하게 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을 입안하게 하는 단초가 됐다면 이를 촉발한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어떤 변화를 꾀해야 할까.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본래 취지처럼 악플을 게시하는 네티즌을 사전 실명으로만 확인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의 데이터베이스에는 IP 주소라는 접속 위치정보가 저장돼 있으며, 수사기관은 이를 바탕으로 전국 어디든지 5분 내에 출동할 수 있다. 이렇듯 현재의 인터넷 기술로 충분히 악플을 게시한 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며 기술로 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데도 일부 행정 편의성 때문에 대국민 서비스를 포기한다면 제한적 실명제는 다시 검토돼야 한다.
우리 제도에는 국민에게 신고를 요구하는 것이 많다. 이사를 가면 전입신고를 해야 하고 아이를 출산하면 출생신고를 위해 주민센터에 가야 한다.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주민번호를 입력하고 신고한다. 선진국에서는 이사 후 전기나 가스를 설치하면 자동으로 접수가 되고, 아이를 낳으면 병원에서 확인 신고를 직접 해준다고 한다. 경제 위기 속에서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일하는 근로자가 관공서에 드나드는 시간을 줄여주는 접근이 필요하다. 인터넷도 이러한 발상하에 네티즌의 안전과 신뢰를 도모한다면 글로벌 추세도 맞추고 인터넷 역기능도 방지하고, 정치적 갈등도 해결될 것이다.
이경호 시큐베이스 대표/klee@secuba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