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이야기] 슈발블랑

 몇 년 전 와인을 소재로 한 ‘사이드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마일즈라는 주인공은 와인에 푹 빠진 사람으로 대단한 수준의 와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결혼 10주년 때 마시려고 곱게 보관해 놓은 와인이 슈발블랑(Chateau Cheval Blanc) 1961년산이었다. 이혼한 전 부인이 재혼한 것을 알고는 그 귀한 와인을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종이컵에 마시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가슴 아리게 하는 명장면이었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 마시려고 한 와인 슈발블랑. 그러나 그 와인을 마시는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순간일 수도 있다.

 슈발블랑은 보르도 생테밀리옹 북서쪽 끝자락의 포므롤 접경지역에 있으며 진흙과 모래, 자갈이 많은 포도밭에서 포도품종 배합도 보편적이지 않은 카베르네 프랑 65%, 메를로 35%의 유기농법으로 양조하는데 수령 35년의 포도나무 열매를 사용한다. 카베르네 프랑의 단단한 구조감과 집중도, 메를로의 아로마와 묵직한 타닌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생테미리옹 와인 등급 분류는 독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1955년에 처음 제정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특등급 와인은 샤토 오존과 샤토 슈발블랑 두 개뿐이다.

 생테밀리옹 지역은 보르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서 옛날 순례자들이 성지순례 때 잠시 들르던 마을이다. 메독지역에 비해 교통이 불편해 국제화에 뒤졌지만 타고난 테루아와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의 우아한 포도 맛으로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와인산지다.

 슈발블랑은 늘 조연 역할만 하는 카베르네 프랑을 주 품종으로 등장시키고 부드러운 메를로로 감싸 강한 무게감과 입안을 실크로 휘감는 듯한 부드러움이 특징인 와인이다. 20년 이상 장기 보관하면 더욱 훌륭한 와인이 되지만 초기에 마셔도 푸르티한 향을 지닌 기품이 있는 관능적인 와인이다. 슈발블랑은 백마라는 뜻이다. 옛날 프랑스 국왕이 흰 말을 타고 이 마을을 들렸다는 전설 속의 백마로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와인이다.

 몇 번 주인이 바뀌다가 최근에 명품그룹인 LVMH에서 인수하면서 페트루스 양조 책임자의 아들을 영입해 와인 양조책임자로 앉혀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947년과 1982년 와인이 로버트 파커 100점짜리 와인인데 조만간 100점짜리 와인이 또 한 번 탄생하리라 본다. 요즈음 1등급 와인들은 가격이 계속 올라서 그림의 떡이 되고 있지만 세컨드와인이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슈발블랑의 세컨드 와인은 르 프티 슈발(Le Petit Cheval)로서 그 맛이 슈발블랑에 뒤지지 않는다.

 구덕모 와인앤프랜즈 사장 www.wineandfriend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