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 Analysis-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증권IT

 ◆A 증권사 현업 부서의 IT요청 사항

-자산관리담당부서:“소액결제서비스와 신용카드업무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발해 주세요”

-국제/해외담당부서:“FX(외환)마진거래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자산운용부서:“다른 증권사들보다 먼저 상품선물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법인담당부서:“대차거래업무(프라임 브로커리지)도 빨리 필요합니다”

 요즘 증권사들의 IT 부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월 4일 시행된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여파로 각종 신사업이 추진돼 이에 따른 시스템 구축 작업들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요청들은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사업이라며 프로젝트 기간이 매우 짧게 요구되고 있다. 문제는 중대형 증권사의 경우, 최근 차세대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했음에도 불구, 자본시장법 관련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자본시장법 대응이라는 명목 아래 명확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관리 없이 ‘동시에, 다, 빨리’가 요구되고 있는 현업의 요청도 문제다. 

◇‘우선 구축해 놓고 보자’=현재 많은 증권사들이 우선순위를 정할 틈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각종 단위업무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대형 증권사의 경우 그동안 차세대 프로젝트를 추진해 오면서 현업의 요구 사항들을 차세대 이후로 연기해 놓은 것이 많다. 최근에 차세대 시스템을 오픈한 증권사들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기도 전에 자본시장법 관련 요구 사항들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실제 5개 이상의 시스템 구축에 매달려 있는 증권사도 적지 않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이 자본시장법 이후 구축하고 있는 시스템들은 소액결제시스템과 FX마진거래시스템, 상품선물시스템, 대차거래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소액결제시스템은 이미 많은 증권사들이 개발을 완료했거나 마무리 작업에 와 있는 상황이다. 그 외 FX마진거래시스템, 상품선물시스템, 대차거래시스템 등은 늦어도 올 하반기 안에 구축을 완료할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 증권사 중 이런 새로운 사업에 대해 인가가 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난 2월 4일 이후 3개월여 동안 금융투자회사의 신사업 인가 신청은 23건에 불과했고 이중 17건은 기존 증권사들이 선물업 진출을 위해 낸 장내파생상품 매매·중개업 추가 신청이었다고 밝혔다. 23건 모두 금융당국으로부터 아직 인가를 받지 못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선물업 등의 인가가 나는 데도 앞으로 최소 2∼3개월은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들은 이후 펼쳐질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시스템 구축부터 먼저 해놔야 한다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면밀한 타당성 검토를 거쳐서 진행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라며 “다른 증권사들이 구축하니까 따라하기 식으로 너도나도 구축하는 경향이 짙어보인다”고 지적했다.

 ◇운영, 유지보수 문제 배제=올해는 자본시장법 시행 원년이다. 소액결제, 외환마진 등 증권사에서는 경험해본 적이 없는 업무들을 시행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 보니 실제 각 증권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어떤 시스템부터 구축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한 증권사 CIO는 “많은 증권사들이 이것저것 면밀히 검토할 여건이 사실상 없다”며 “예상치만 가지고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라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증권사들이 무턱대고 새로운 사업에 나서고 있다고 할 순 없다. 각사 환경에 맞춰 충분한 사전 검토와 함께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의 비전에 걸맞은 사업이라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확고한 의지만큼이나 시스템 구축에도 이런 각사의 전략적인 색깔이 뚜렷이 반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법 시행에 대한 명확한 세부지침을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시스템들을 먼저 구축하는 것도 혼란을 더하고 있다”며 “대책 없이 추진했다가 잘 안되면 그냥 없애면 된다는 식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화된 영역에 전략적으로 집중 투자하는 모습이 아닌 우선은 다 해보고 난 뒤 안 되는 것은 버리고 잘되는 것만 키워보자는 단순한 전략에 그치고 있다. 현재 증권사들이 구축하고 있는 시스템들은 한 시스템당 최소 10억원에서 많게는 20억원 이상 소요되는 프로젝트다. 향후 시스템별로 운영, 유지보수 인력도 2∼3명 이상이 필요한 규모의 시스템이다.

 한 증권사 CIO는 “현업의 요구 사항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IT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하지만 시스템 개발은 크게 어렵지 않지만 향후 운영 인력 확보와 유지 보수에 대한 고려는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증권사 IT담당자들 사이에서는 몇 년전 앞다퉈 구축했던 해외주식직접매매시스템(HTS)을 예로 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해외주식직접매매시스템의 경우 2006∼2007년에 걸쳐 국내 증권사들이 일본과 홍콩의 해외주식투자를 직접 할 수 있도록 구축한 시스템이다. 일부 대형 증권사는 성공했지만 대다수 증권사들은 현재 국내 증권사와 해외 증권사를 연결하는 중개업체에 주는 회선비용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차세대 추진, 증권사는 이중고=이제 막 차세대 프로젝트를 시작한 증권사 CIO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차세대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자본시장법 대응을 위한 현업의 업무 수용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시스템을 기반으로 우선 개발을 진행하고 나중에 차세대 시스템에 적용하기 위한 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단순히 차세대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처리하겠다는 핑계를 댈 수 없는 노릇이다.

 최근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한 NH투자증권도 차세대 프로젝트에 자본시장법 관련 추가 개발 작업 부분을 모두 고려해서 예산을 집행했다. 차세대 시스템의 업무분석 및 요건 정의 단계로 한창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한국투자증권도 현재 기존 시스템에서 소액결제시스템 등 관련 시스템들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후 신시스템 환경에 맞춰 수정, 보완해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신규로 다시 개발할 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야 한다.

◆깐깐해진 증권사들

 국내 증권사들이 자본시장법 이후 각종 신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투자대비효과(ROI)에 대한 검증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사업 진출로 발생할 수 있는 신규 투자에 대해 ROI를 창출해 낼 수 있는 프로젝트에 초점을 두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은 ‘겸업을 통한 시너지 창출’로 세계적인 투자은행(IB)으로의 목표를 내걸고 있다. 중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모두 IB라는 동일한 목표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만큼 경쟁사가 하는 것 이상을 해야 하는 시기인 만큼 관련 IT투자에도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에 증권사들은 올해부터 별도의 자본시장법 관련 대응 TF팀을 구성해 프로젝트의 성과와 ROI를 철저히 분석하고자 한다. 현대증권은 올해부터 시스템을 론칭한 날로부터 6개월 이후 투자의 정당성, 합당성 여부 등을 분석해 보고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IT투자에 대한 ROI를 제대로 따져보겠다는 의지다.

 삼성증권도 2007년 말부터 기능별로 구성된 개발 조직을 상품별로 바꿔 자본시장법과 같은 시장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체제를 만들어 안정화한 단계로, 올해부터는 철저하게 실효성을 검증한다는 입장이다.하나대투증권도 최근 성과평가 관련 제도를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비즈니스 성과와 IT 성과를 명확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 우리투자증권도 사후 결과체계 보고를 더욱 강화한다고 밝혔다.

성현희기자,sungh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