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국제적인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영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조정해 최고등급인 ’AAA’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 가운데 미국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S&P는 21일 영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고 밝혔다. 영국의 국가재정이 급속하게 나빠진 것이 하향 조정의 원인으로, 영국이 공공부채 줄이기에 나서지 않으면 AAA 등급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고 S&P는 설명했다.
영국의 신용등급 전망 하향 파장은 미국까지 번져 증시와 달러화가 하락하는 등 시장이 출렁했다.
미국도 영국과 함께 최고 신용등급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진 탓이다. 뉴욕증시는 이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전날보다 1.54% 떨어진 8,292.13에 거래를 마치는 등 하락세를 보였고 미 달러화도 유로당 1.38달러대로 가치가 떨어져 유로화에 대해 4개월래 최저치를 경신했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 퍼시픽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핌코) 최고투자책임자는 이날 CNBC에 출연해 미국이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달러와 주식, 채권의 매도세를 불러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로스는 “조만간에 (신용등급 강등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시장은 그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시장이 신용등급 전망이 하향조정된 영국을 미국과 쌍둥이처럼 보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국가 신용등급을 정하는 것에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지만 국내총생산(GDP)에서 공공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미국과 영국의 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로스는 미국이 현추세대로 간다면 5년 안에 GDP와 부채가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서 이런 국가의 경우 통상 ’AAA’ 등급을 받지 못하는 점을 거론했다.
미 경제는 최근 금융시장 안정과 함께 조속한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경제지표들은 오락가락 하면서 길고 더딘 회복을 우려하게도 하고 있다.
이날 미 민간 경제조사기관인 콘퍼런스보드가 이날 내놓은 4월 경기선행지수는 1% 상승해 7개월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향후 3~6개월간의 경기를 전망하는 이 지수의 상승은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콘퍼런스보드의 켄 골드스타인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지표들이 현재의 추세를 지속한다면 하반기에는 경제활동이 증가세로 반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회복의 속도는 계속되는 실직사태와 제조업 활동의 부진 등으로 인해 기대만큼 빠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필라델피아연방준비은행이 내놓은 5월 필라델피아 제조업지수는 마이너스 22.6을 기록해 전달의 마이너스 24.4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권에 머물렀다. 신규 주문 지수는 마이너스 25.9로 전달보다 더 나빠졌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주(5월11∼16일) 신규 실업자 수도 63만1천명으로 한 주 전보다 1만2천명이 줄기는 했지만 60만명을 여전히 넘었고 기존의 실업수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합친 전체 실업자 수는 666만2천명으로 집계돼 16주 연속 기록 행진을 이어갔다.
이런 경제지표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전날 올해 미국의 성장률과 실업률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수정 전망한데 이어 나온 것이다. 미국의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1월 제시된 마이너스 1.3~마이너스 0.5%에서 이번에는 마이너스 2.0~마이너스 1.3%로 더 나빠졌고 실업률 전망치도 당초의 8.5~8.8%에서 이번에 9.2~9.6%로 상향 조정됐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나온 경제지표들은 미국 경제의 회복이 길고, 더딘 악전고투의 길이 될 것임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