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거한 것으로 공식 확인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정치적 난관을 극복해 온 ‘오뚜기’ 인물이었다는 평이다.
1946년 8월6일 경남 김해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9년간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패스, 법조인이 된다.
그는 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으나 7개월만에 그만두고 78년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이후 81년 제5공화국 정부가 사회과학 서적을 읽은 혐의로 대학생 20여명을 기소한 소위 ‘부림사건(釜林事件)’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나섰다.
87년에는 대우조선 노동자가 시위 도중 사망한 사건에 연루됐다가 제3자 개입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노동전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김영삼계로 정치에 입문해 3차례에 걸쳐 부산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한 바 있다. 초선 의원 시절에는 국회 5공 청문회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데 이어 2002년에는 민주당 대선 후보에 선출됐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온라인에서 거대 정치세력을 형성했던 ‘노사모’ 등 팬클럽의 지지를 얻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임시절에는 ‘보통사람’을 외치며 서민정치를 펼쳤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 분당 및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소추를 당하는 등 안팎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2004년 3월 12일부터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한 5월 14일까지 63일간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더구나 경제정책과 관련해 끊임없는 구설수에 휘말린데다 안희정씨와 최도술씨 등 386세대로 불린 측근들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수감은 등의 사건이 이어지면서 인기가 곤두박질, 결국에는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퇴임 직후에는 고향인 봉하마을로 낙향했으나 최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사건에 연류돼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돼 검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