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유서 남겨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6시 40분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서 투신, 서거했다. 지난해 2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지 1년여만이다. 노 대통령은 유서에서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 원망하지 마라, 화장해달라’는 짧은 유서를 남겼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국민 모두가 충격에 휩쌓였다.

◇사고 경위=노 전 대통령은 23일 새벽 6시40분에서 50분 사이에 경호원 한명만을 대동한 채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 올라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했다. 머리와 척추 등에 심한 손상을 입고 오전 7시 5분께 인근에 있는 김해 세영병원으로 긴급 이송, 심폐소생술 등을 했다.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양산 부산대 병원으로 다시 이송됐으나 이미 소생 가능성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부산대 병원은 11시쯤 브리핑을 통해 “8시 13분에 병원에 도착, 심폐소생술을 펼쳤지만 9시30분에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서거 원인은 ‘두부 외상’이라고 설명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에 왔을 때는 뇌손상이 심하고 척추도 망가진 상태로 소생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뛰어내렸다” “가족들 앞으로 짧은 유서를 남겼다”며 자살을 공식확인했다.

◇투신 정황=노 전 대통령은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경호관에게 이같이 물어본 후 경호관이 ‘가져올까요’라고 묻자 ‘됐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바위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 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담담하게 얘기한 뒤 바위 아래로 뛰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동행했던 경호관은 즉각 호송 조치를 한 뒤 이를 청와대 경호처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엉이 바위는 사저 뒤편에서 경사 40도 정도의 비교적 가파른 언덕 위 해발 100여m 지점에 있다. 사저와 직선거리는 200여m다.

◇‘원망하지마라’ 짧은 유서 남겨=노 전 대통령은 사저를 나서기 직전에 10줄 가량의 짧은 유서를 남겼다. 유서를 통해서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며 그동안의 심적 상태를 간결하게 표현했다. “책을 읽을수가 없다.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원망하지 마라”는 등의 내용을 10줄 정도로 짧게 정리했다. “화장해 달라. 마을 인근에 작은 비석하나 세워달라”는 유언도 남겼다. 유서 전문 내용은 이르면 23일 오후 경찰에 의해 공개될 예정이다.

◇이 대통령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 대통령은 23일 오전 7시 20분 김인종 경호처장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락사고를 보고 받은 후 충격을 감추지 못한 채 신속한 긴급 의료 대책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이 대통령 오전 한·체코 정상회담 직전 정정길 대통령실장, 대변인, 정무수석 등이 참가한 긴급 수석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참으로 믿기 어렵다.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다”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한·EU정상회의 도중 노대통령 서거 사실을 소식 전해 들은 후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고 전직 대통령 예유에 어긋남이 없도록 모시라고 지시했다. 이에 정정길 대통령 실장은 문재인 전 노무현 비서실장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는 노 전 대통령 유가족과 상의해 장례 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노 대통령 서거와 관련 다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키로 했으며 저녁 출연예정이 KBS 출연계획 취소했다.

◇검찰 수사는 종료 = 법무부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 명의로 성명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종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 성명에서 “현재 진행 중인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는 종료될 것으로 안다”며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충격과 비탄을 금할 수 없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검찰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국정 전반에 영향력이 있었던 노 전 대통령에게 혜택을 얻기 위해 그의 가족에게 ‘포괄적 뇌물’ 640만 달러를 건넸고, 노 전 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잡고 그동안 수사를 벌여왔다.

김 장관은 또 “사망 원인과 경위에 대해선 검·경이 조사 중이며 신속히 규명해 국민께 소상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네티즌 애도 물결=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를 비롯해 인터넷 곳곳에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몇가지 실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모범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다음 아고라에 추모 서명을 제안, 순식간에 1만5000여명이 서명하기도 했다. 또 속속 올라오고 있는 관련 기사에도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댓글이 줄을 잇는 등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각계 ‘안타깝다’= 각계에서도 “충격적이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입장을 속속 내놓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자유선진당 등 정계에서는 “충격적이고 당혹스럽다” “안타깝다”는 등의 내용으로 공식 논평을 내놨다. 민주당은 긴급회의를 열고 “깊은 애도를 표한다. 누가 무엇이 왜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를 맞게 했는지 국민과 역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충격적이고 불행한 일”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