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침통·충격"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9시30분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5시45분 경호원과 함께 경남 김해시 봉화마을 사저 인근 봉화산을 오르다 6시40분 봉화산 7부 능선의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했다.

노 전 대통령은 김해 세영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다시 부산대 양산병원으로 이송,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회복되지 않고 9시30분 굴곡 많은 인생역정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부산대 양산병원에 안치됐다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로 운구됐다.

노 전 대통령은 투신 30분전에 컴퓨터 파일 형태로 남긴 A4용지 한 장 분량의 유서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면서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고 건강이 좋지 않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며 “미안해 하지 말고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고 유언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오전 9시25분께 병원에 도착, 시신을 확인한 뒤 실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승완 양산 부산대병원장은 브리핑에서 “노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8시23분께 인공호흡을 하며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도착 당시 의식이 없었고 자가 호흡도 없었다”면서 “두정부에 11㎝ 정도의 열상이 발견됐으며, 심폐 소생술을 실시했지만 회복이 안돼 오전 8시30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의 ‘포괄적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30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으며, 이후 미국의 아파트 구입 등 새 의혹이 제기돼 왔다.

전직 대통령이 대통령 재직시 뇌물 수뢰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상 초유의 일이 빚어진 것은 비리와 부패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정치사의 극단적인 비극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전직 대통령이 퇴임 뒤 줄줄이 구속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근본적 제도 보완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성명을 내고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충격과 비탄을 금할 길 없다”면서 “현재 진행중인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는 종료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상당 부분 동력을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비보를 접한 뒤 충격과 비통함을 감추지 못한 가운데 청와대와 각 정당은 긴급 조문단을 파견했으며, 향후 정치권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야당은 ‘박연차 게이트’에 대해 검찰의 수사 칼날이 구(舊) 여권 인사들로 집중돼 있다며 편파.표적 수사 의혹을 제기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어, 노 전 대통령 서거의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전 7시20분께 관저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보고받은 뒤 오후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참모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이 대통령은 “참으로 믿기 어렵다.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라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전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한승수 총리 주재로 장관회의를 열어 장례 절차 등 후속조치 마련에 들어갔다.

정부 관계자는 “유족들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라며 “청와대와 총리실, 유족측이 긴밀한 협의를 통해 조만간 장례 형식과 절차를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르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맹형규 정무수석을 조문단으로 파견했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각 정당들도 조문단을 보냈다.

이에 앞서 각 정당은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일제히 애도했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큰 충격이다. 말할 수 없는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고,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금할 길 없다”면서 “누가, 무엇이, 왜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를 맞게 했는지 국민과 역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를 방문중인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24일 급거 귀국키로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