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이 남긴 숙제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기간부터 권위주의 청산과 지역주의 타파, 남북화해협력 등 다양한 화두를 제시했고 이 가운데 일부는 입법화를 거쳐 어느정도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일부 정책은 논의단계에서부터 극심한 논란만 불러일으킨 뒤 폐기되는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일부 지지자들은 국민이 ‘바보 노무현’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제시한 화두들은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 실현돼야 할 숙제라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최대 화두는 지역주의 타파였다. 여야가 영호남을 양분하는 정치현실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선거법 개정이 추진됐다. 취임 첫해인 2003년 국정연설에서 노 전 대통령은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해 달라”면서 “이런 제안이 내년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권한을 이양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지난 2005년 국정연설에선 소선거구제를 개편해 줄 것을 호소했다. 특정 정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현행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지역주의가 극복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한나라당이 연정 제안을 거부하자 “대연정을 않더라도 선거제도만 고친다면 권력을 내줄 수 있다”고 집요한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호남지역을 텃밭으로 하는 구 민주당과의 통합논의에 나서자 “지역당으로 회귀하는 통합신당 논의는 분명히 반대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노 전 대통령의 노력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선거법도 개정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제시한 또 하나의 화두는 후진적 정치문화의 개선이었다.

여소야대로 인한 국정의 비효율을 방지해야 한다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4년 연임제 개헌을 추진했지만 역시 실현되지 않았다.

18대 국회들어서도 4년 연임제 개헌의 필요성이 여야 구분없이 제기된 상태이지만, 어느정도 논의가 구체화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이밖에도 노 전 대통령은 다양한 분야의 정책들을 추진했지만 현실의 벽에 막혔다.

지역균형발전을 기치로 걸고 의욕을 보였던 행정수도 건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무산됐다.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취지로 폐기하려 했던 국가보안법은 한나라당의 반대로 생명을 유지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두번째로 북한을 방문해 도출해낸 10.4 남북정상선언도 이명박 정부 출범후 위치가 애매해진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존의 남북간 합의사항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천명했지만,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면서 10.4 선언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는 공식서명된 뒤 2년가까이 비준되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민주당이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반대하는 것도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재임기간 실현되지 못하고 용도폐기됐던 참여정부의 이상과 정책구상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지지자들의 관심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