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고 무모한 도전과 반전이 거듭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1946년 8월 경남 진영읍 봉화산 자락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에게 인생 최대의 목표는 가난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부산상고에 입학했고 초기 변호사 시절의 목표도 이에 맞춰졌다.
하지만 1981년 처음으로 시국사건인 ‘부림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거듭났다. 1987년에는 대우조선 노동자가 시위 도중 사망한 사건에 연루됐다가 제3자개입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노동전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88년 총선때 부산 동구에서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 그는 그해 11월 열린 5공비리청문에서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른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이 시작되면서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 김정길·이철 등과 함께 의원직을 내던졌다.
이 때부터 춥고 배고픈 시절이 시작됐다. 1992년 총선, 1995년 부산시장, 1996년 총선도 패배였다.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어렵사리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그는 2000년 4·13총선 때 ‘지역구도 극복’을 내걸고 고집스럽게 다시 부산으로 향한다. 바보처럼 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은 그에게 네티즌들은 ‘바보’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노사모를 결성해 열성적인 지지 운동에 나섰다.
2002년 대선 도전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때만 해도 그는 군소후보에 불과했다. 하지만 개혁과 변화의 바람을 내건 그는 기적적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으며 그 여세를 몰아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시련은 계속됐으나 원칙과 소신을 밀어 붙이면서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그는 퇴임 후 정치적 자양분인 도덕성에 타격을 입자 원칙과 소신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낳고야 말았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