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임기만료를 며칠 앞둔 지난 2008년 2월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보통신부에 지시해 청와대에서 ‘우수 SW 시연행사’를 가졌다. 정보통신부 관료들은 물론이고 SW기업 CEO마저도 ‘임기 막바지에 생뚱맞게 왠 행사’라며 툴툴거렸지만 노 전 대통령은 하나하나 SW를 살펴 보며 시연했다. 지난 1994년 명함과 일정을 관리하는 정치인용 인맥 관리 프로그램 ‘한라 1.0’을 개발하고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시스템’을 고안했던 SW개발자이기도 했던 노 전 대통령의 IT에 대한 무한애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발자로서 IT를 사랑하다=전 세계 최초로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IT기술을 통해 대선에서 승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IT와 과학기술의 절대적인 후원자였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첫 해인 2003년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으로 정보통신인의 날에 참석 “IT를 중심으로 신성장동력 발전 전략을 수립해 미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며 IT산업 육성은 물론이고 IT를 통한 정부 효율 증대와 경제·정치·교육을 변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정보통신부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통신사업자들로부터 거둬들인 재원과 국가예산을 바탕으로 통신서비스부터 통신장비·반도체·로봇·SW에 이르기까지 선순환구조를 구축하고 투자를 집중했다. 정부 효율화와 SW 및 IT서비스산업 육성 차원에서 정보화예산을 취임 당시 2조원 규모에서 3조원 규모로 확충했다.
정통부가 부처 간의 경쟁이 심했던 지난 2006년에 내놓은 ‘u-IT839’라는 정책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힘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노 전 대통령은 IT산업 육성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IT기술을 활용하는 데 앞장을 섰다.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로 국민들의 의견을 여과 없이 듣고 답변했으며 국정홍보처에 오른 글에 직접 댓글을 달기도 했다.
공무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자결재’ ‘전자보고’ 등 IT 활용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정부부처 한 관계자는 “IT시스템 도입 당시에 많은 공무원들이 불평했지만 조금 지나자 모두 업무 효율성이 증대됐다는 것을 인정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독려가 아니었으면 이러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보화 투자는 지난 2003년 13위에 그쳤던 세계 각국의 전자정부 평가에서 2004·2005년 연속 세계 5위로 순위를 급상승시켰다. 정보기술로 국민 참여 정도를 측정하는 전자적 참여지수는 2003년 12위에서 3위로 껑충 뛰었다.
◇미래를 짊어질 과학기술 우대=노 전 대통령은 미래를 대비한 과학기술 투자와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취임식에서 ‘지식정보화 기반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신산업을 육성하며 과학기술을 부단히 혁신해 제2의 과학기술 입국을 실현하겠다’는 국정 방향을 제시했다. 곧 전 부처 합동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육성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잠재력이 크고 신산업과 전통산업의 선순환적 혁신으로 5년∼10년 후 우리 경제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하자는 취지였다.
노 전대통령은 △지능형로봇 △미래형 자동차 △차세대 전지 △디스플레이 △차세대 반도체 △디지털TV·방송 등을 10대 핵심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했으며 이 중에 상당수는 MB정부에서도 계속 육성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 간의 갈등이 빚어지자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내에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신설했다.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도 힘을 실어줬다.
과학기술이 우리 미래를 결정한다는 노 전대통령의 의지는 지난 2004년 10월 과학기술부 장관을 파격적으로 부총리로 격상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과학기술부 장관이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된 산업·인력·지역 혁신 등 미시정책을 총괄토록 하고 부총리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기술혁신본부(차관급)를 신설했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조직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산업과 과학기술에 대한 전반적인 기획·조정·총괄업무 등을 담당하고 실질적인 예산권도 확보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IT와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은 타 부처의 견제를 쉴새 없이 야기했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정보통신부 해체, 과학기술부와 교육부의 통합 등이라는 역풍을 맞게 됐다. IT와 과학기술을 아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 평가는 이제 후대의 몫으로 남은 셈이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